2024/08 29

시인 안에 북적이는 찌꺼기들-최일화 시집

방정식 최일화 사랑한다는 말을 했더니 그녀가 떠나버렸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위험한 일 날갯짓으로 새를 붙잡아놓거나 사방으로 튀는 공을 붙잡으러다 놓치고 마는 것은 새에게는 새의 마음이 있고 공에게는 공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새의 영혼과 공의 본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시가 태어나는 때가 있는 것처럼 새가 알을 까고 나오는 시간이 있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려거든 때를 맞추어야 한다 앉으려는 새는 결국 곁에 날아와 앉는다 날갯짓하는 새를 붙잡아놓으면 초라하게 깃털 빠진 껍데기 하나 잡힐 뿐이다 그것은 방정식의 정답이 아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사차 씨 우리 동네 마실 방엔 사차 씨가 마실 온다 술 잘 먹고 재미있는 사차 씨 어느 날 넌지시 물었구먼 한자로 성함을 어떻게 쓴다요 넉 사에 버금 차 사..

카테고리 없음 2024.08.21

그 사람을 읽는다-홍승자 시집

봄으로 가는 동백 흥승자 푸른 잎을 압도하는 붉은 빛 외겹 입술 단아하게 열어 황금빛 첫사랑 그 겨운 고백을 목숨 다해 뱉어냅니다 붉디붉게 피었다가 단칼에 툭, 툭 베어지는 아릿아릿한 저 젊은 열정을 휘감고, 부연 아지랑이 속을 출렁이며 걸음을 놓고 있습니다 아랫녘 강산이라도 아직 겨울 자락을 놓지 못하는데 잔설 위에 각혈 붉게 흩뿌리는 동백 어찌 이리 뜨거운지요 햇살에 기대어 남녘 산사를 찾아드는 길가엔 두고 간 絶命 詩들 낭자합니다 무심한 햇살도 따끈따끈 동토의 해동을 꿈꾸네요 일상의 일탈로 누리는 자연과 자유는 동의어여서 무디고 무뎌진 나의 심연에 젖줄처럼 찌르르 도는 시원의 강줄기 서럽도록 고운 남녘 산천 한 구비 두 구비에 그 시원의 물꼬를 터트리며 내달립니다 동백처럼 아린 젊음을 기억합니다 ㅡ..

카테고리 없음 2024.08.20

제3회 김동명시낭송대회 개최

제3회 초허 김동명 시인 시낭송대회가 강릉시 사천면 김동명문학관에서 개최되었다 17일 오후2시, 강릉문인협회 김경미 회장의 환영사를 듣고 시작한 이날 대회는 이진모 전 가톨릭관동대 교수의 진행으로 30여명의 참가자들이 전국에서 집결하여 열띤 경연을 펼쳤다 이날 심사는 홍승자 시인, 공혜경 시낭송가, 김남권 시인이 맡아 진행했다 특히 이번 대회는 고령의 참가자들이 시를 낭송해 감동을 전해주었으며, 남성 참가자들이 절반 가까이 경연에 참여해 시낭송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다만 시의 해석과 감정이입, 정확한 발음을 통한 자기 표현을 통한 자연스러운 낭송은 숙제로 남았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70여 명의 관객이 몰려 김동명 시인의 시정신을 기리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8.19

푸른, 숨-이주영 시집

푸른, 숨 이주영 어둠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적막을 끌어안는다 낮게 내려앉은 밤의 소리들이 불나방처럼 날아와 새벽을 훔치기 시작했다 길을 찾는 그믐달은 아직 발자국을 떼지 못했지만 몸을 달싹이는 태초의 소망 몇 가지가 보름달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무겁게 걸쳤던 어제의 굴레를 벗어놓고 말갛게 흐르는 은하수를 온몸 가득 퍼 담았다 냉기에 시달리던 과거를 씻기자 목련꽃 속살같이 피어나는 낱말들 상처를 동여맨 날숨의 순도에 녹색불이 켜지고 안에서 푸른 숨이 튀어 나왔다 과거와 현재를 알맞게 버무린 그 길에 내 삶을 끌어안은 돋을볕 하나 부시게 걸어오고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별을 팔아 봄을 샀다 우화를 꿈꾸던 꽃상여에 매달려 한 마리 나비로 날아갔다 그 후로 기억이 역류할 때마다 몸 속엔 ..

카테고리 없음 2024.08.18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낭송 캠프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시낭송 캠프에 다녀왔다. 15일부터 16일까지 1박2일 동안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진행된 캠프의 첫 날 첫 강의는 김태근 원장의 '참 자아와 만나는 시낭송', 두번째 강의는 김남권 시인의 '이미지로 완성하는 시낭송'에 이어서 세번째는 서수옥 낭송가의 '시낭송 퍼포먼스는 이렇게', 네번째 강의는 박성현 알파크 회장의 '울림을 주는 시낭송의 실제', 다섯번째 강의는 이정하 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학' 등 강의를 이어서 들었다. 저녁 시간에는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최구식 원장의 '남명과 임진왜란' 이라는 특강을 듣고, 이강진 가수와 김민숙 낭송가의 콜라보 무대를 감상하고 저녁 8시부터 김남권 시인이 진행하는 힐링 경매 축제를 하면서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둘째..

카테고리 없음 2024.08.17

남명 조식의 흔적을 찾아서

남명 조식의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경남 산청의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 왔다. 한국문화예술교육원 1박2일 시낭송 캠프에 특강과 시낭송대회 심사를 위해 15일 오후부터 이곳에서 머무르며, 오늘 아침 6시 남명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기념관과 함께 오백 년전 인재양성의 요람이었던 산천재와, 그가 기념식수로 심었다는 매화 나무를 보고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한 시간을 걸었다. 그곳에서 남명 선생의 제자였던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수백 명의 의병들을 생각하다가 작금의 시대에 밀정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생각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늣지, 가슴이 쓰린 아침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4.08.16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정우림 시집

알 수도 있는 사람 정우림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받는 질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옵니다 비밀번호를 만들고 연락처를 삭제하고 다시는 만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른 척 지나쳐야겠습니다 누군가 나도 모르게 나를 지켜보나 봅니다 문을 열지 않고 들려주는 이웃집 소리 창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운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신가요? 친구의 친구 그 건너 친구의 친구는 물어봅니다 함께 놀지도 않고 함께 웃지도 않고 낯이 빨개지는 추억도 없는 친구가 친한 척 사귀자고 합니다 추운 나라와 더운 나라 사람의 웃음을 사랑해도 될까요? 숨어 있다가 매일 나타나는 사람은 사실 접니다 친구의 친구와 나의 나를 조용히 삭제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

카테고리 없음 2024.08.15

거기 두고 온 말들-권혁소 시집

그 봄 권혁소 그 후 세상의 모든 봄은 다만 그 봄과 아닌 봄일 뿐이어서 봄도 바다도 더 이상 그때의 빛깔이 아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새벽 생각 그대가 승진에 목매는 걸 보면서 시도 버리겠구나 생각했다 인기 앞에서 좌불안석하는 그댈 보면서 급기야 소설이 망가지겠구나 생각했다 자리에 연연하는 걸 보면서 그대의 운동은 끝 났 구 나 직감했다 슬픈 새벽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 긋기 퇴직을 앞두고 마음으로 그리는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선 긋기 첫 수업, 선생님은 스치듯이 그리라는데 자꾸자꾸 힘만 들어가 어깨가 뻐근하다 그렇다고 곧은 선을 그리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살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장독대 엄마가 닦던 장독을 아내가 닦는다 익숙해지는 풍경 이 일은 원래 세상 모든 엄마들의 일..

카테고리 없음 2024.08.13

슬픈 봄날 엄마의 미소-황동남 동시집

가을 바람 황동남 엄마 아빠 묘소로 인사를 가니 엄마 아빠는 내가 오는 줄 벌써 알고 숲속의 오솔길을 말끔히 쓸어 놓고 돌아올 땐 내 마음 허전하다고 밤나무 흔들어 알밤을 톡톡 던져주며 잘 가라고 안 보일 때까지 들국화 잎 손 저어 배웅해줘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드름 잠 깨어 문을 여니 처마 끝에 쪼르르 크고 작은 하얀 창들이 뾰족뾰족 금세라도 마당 가슴을 찌를 듯 바싹 성이나 꽂혀있네 애고 저러다 정말 마당 가슴을 찌르면 어떡해 해님은 어디서 뭐 하지 빨리 오지 않고ㆍㆍㆍ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밤하늘 해님이 종일토록 놀다간 자리 초저녁 아기별들 한 아름 가득 송이송이 찔레꽃 희뜩씌뜩 피어나 눈 맞춤 소꿉놀이 부싯돌 반짝반짝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동심으로 살고 싶다 빨주노초파남보 재잘재..

카테고리 없음 202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