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도 있는 사람
정우림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받는 질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옵니다
비밀번호를 만들고
연락처를 삭제하고
다시는 만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른 척 지나쳐야겠습니다
누군가 나도 모르게 나를 지켜보나 봅니다
문을 열지 않고 들려주는 이웃집 소리
창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운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신가요?
친구의 친구 그 건너 친구의 친구는 물어봅니다
함께 놀지도 않고 함께 웃지도 않고
낯이 빨개지는 추억도 없는 친구가
친한 척 사귀자고 합니다
추운 나라와 더운 나라 사람의
웃음을 사랑해도 될까요?
숨어 있다가 매일 나타나는 사람은
사실 접니다
친구의 친구와 나의 나를 조용히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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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다는 먼 산을 찾아갔습니다
새의 그림자가 시간을 돌립니다
검은 돌에 새겨진 불꽃의 글자들
구름이 태어나는 벼랑 같아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 만나면
주름 깊은 이마를 더듬어 볼 수 있을까요
걷다가 도착한 곳이 여기, 비탈엔 검버섯이 많고
나무들은 등이 굽었어요
할아버지 생각은 한 번도 써 본 적 없네요
불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
그 먼 이름에 유황 냄새가 배어 있는 아버지의 아버지
돌 속에서 살다가 돌 속에서 돌아가신 돌의 조상님
벼랑의 돌주머니에 제비가 살고 있네요
할아버지 품에서 알이 되고
날개를 달고
검은 눈을 가진 새
주술에 걸린 밤과 낮의 수염 자락에 매달린 집
돌기둥 육각형 안에는
포도주처럼 발효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할아버지의 불은 차갑게 식어 돌이 되고
지금도 돌덩이 등에 지고 산을 오르시나요
꿈이 쏟아져 내리는 밤마다
말랑말랑한 과일을 찾아 맛봅니다
돌도서관에 사시는 할아버지,
살구나무 피리를 불어 드릴테니
진흙과 석양의 음악을 조금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불의 씨앗을 저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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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림 시인의 이번 시집은 유목적 상상력이 '꽃의 유목'으로 '이미지 유목민'으로 시편들 곳곳에서 발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번째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의 '돌기둥 육각형' 안에서 부디 '불에서 태어나신 할아버지'를 만나고 그녀가 불의 씨앗을 할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금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