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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북극-권혁연 시집

손 안에 달걀 권혁연 겨울 베란다에서 방금 꺼낸 달걀 떨면서 한 손을 웅크렸다 힘을 더하거나 다 놓지 못하고 둥글게 한 알을 보존시키는 이상한 감정에 내가 낳은 것인가 엉거주춤 서서 부화를 고민했다 놓아먹인 거며 성분을 꼼꼼히 따져 먹던 시절에는 부화하지 않을 뿐 그날의 선택을 믿었고 황백만 있어 신처럼 강했다 하루 한 개씩 무한 달걀을 깨 먹고 부활을 믿지 않는 신자처럼 아슬아슬 살면서 내일은 두 개의 동그라미가 완성될 것을 모레는 네 개의 동그라미가 완성될 것을 기원하였다 기원을 찾아 가면서 만들어진 동그라미들 난좌에 앉아 난황이 썩어 가고 냄새를 견디는 일상들 기도가 될 때까지 경계선 주변을 서성거렸다 날달걀은 나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나의 기원은 지금부터다 속으로 웃었다 부화를 기다리거나 삶을까 구..

카테고리 없음 2024.09.23

제43회 강원아동문학상 시상식 및 출판기념회

강원아동문학회 제49집 출판기념회 겸 제43회 강원아동문학회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21일 오전 10시 강릉 김동명 문학관에서 시작한 행사는 오프닝으로 라라 어린이 중창단 심아윤 최유리 최유주 어린이와 함께 하는 동요로 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금옥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아동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소중한 동행을 함께하는 회원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서 김남권 부회장이 강원아동문학상 심사경위를 발표하고 권명은 수상자에 대한 상패와 꽃다발이 전달되었고 수상 소감을 들었다 2024년 좋은 작품상은 상반기 동시부문 김금순 동화부문 김미란 하반기 동시부문 김보람 동화부문 이희갑 시인에 대한 시상을 하고 제9회 강원아동문학 신인작가상 신소담 작가에 대한 시상을 권영상 부회장이 해주었다 공로..

카테고리 없음 2024.09.22

브라질에 내린 눈-김완수 시집

하동 꽃바람 김완수 봄날엔 하동에 가야 한다 섬진강 동쪽은 이미 벚꽃의 영토 꽃은 바람을 부르고 바람은 하동에 둥지를 트니 나도 하루쯤 여기서 묵는다 하동에서 구례 가는 길 바람 몰래 길을 나선다 강과 산이 부둥킨 곳이라 나무들은 경계를 모르고 꽃은 화환처럼 피어 있다 내가 하객으로 들어설 때 허겁지겁 달려온 바람이 나무마다 흔들며 봄을 묻는다 나는 하늘거리는 나무 허공에 봄이 폴폴 날릴 때 내 젊은 날들도 따라 흩날리는구나 봄은 하동에서 시작한다 봄빛이 구례까지 이어지고 바람이 한걸음에 달려가도 나는 장터에서 쉬어 가야지 내 여정은 하동을 다시 찾는 것 바람보다 먼저 찾아가리라 봄날이 꿈틀거리는 하동으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꽃무릇 다음 생엔 꽃무릇으로 태어나리라 외딴 산기슭도 좋으나 무릎 높이로..

카테고리 없음 2024.09.18

사무친 그리움이 아니어서 좋다-법혜 시집

풍경風磬 법혜 처마 끝 물고기 바람에 기대어 말을 건너온다 스치는 바람에 마음 얹지 말라고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 흔들리지 말라고 이는 바람에 설레지 말라고 기슭에 버리고 온 뗏목 돌아보기 없기라고 님의 향기 고이 품고 뒷걸음질 치지 말라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도 그래 나풀나풀 꽃비 나리시는 날 방에서 방으로 이사를 한다 보이지 않는 뒤쪽 구석구석 마다 켜켜이 쌓인 먼지가 말을 건다 -보이는 데만 쓸고 닦으면 뭐 하니? -그래서 이렇게 뒤집어 보잖아 -마음도 그래 -그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잠깐 잠깐 잠깐만요 아주 잠깐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멈추어 보아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일어나는 대로 알아주면서요 숨결과 숨결 시간과 시간 사람과 사람 삶과 삶에는 꼭 필요한 , ..

카테고리 없음 2024.09.17

효석문화제 작가와의 만남

효석문화제 마지막 날, 여정이 끝났다 무이예술관하고 함께 한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으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열흘간의 일정이 메밀꽃밭 한가운데서 행복한 시간을 마쳤다 김고니 시인 김기린 시인 심봉순 소설가 법혜스님 행복한 책 읽기 김미연 작가 김남권 시인, 그리고 독립서점 선인장과 함께한 올해는 체험 프로그램에 가족들의 참여가 많았다는 게 보람 있는 일이었다 이제 봉평엔 메밀꽃이 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간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4.09.16

꽃들은 밤에 운다-김기린 디카시집

김기린의 디카시들을 읽으면서 메를로 퐁티를 떠올렸다. 그가 죽기 직전에 쓴 에세이 눈과 마음에서 자신의 후기 사상에 속하는 타인과의 소통과 사고가 어떻게 지각의 영역-곧 우리에게 진리를 전수해 주는 영역-에 자리를 잡았다가 그 영역을 넘어서는지를 보여주는 일을 이야기한다. 디카시 역시 먼저 봄-사진이 보여주는 너머의 세계- 을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문자를 추가하여 완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디카시는 사진과 문학의 만남을 통해 미학-중심개념인 미와 예술을 완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기린의 디카시가 남다른 점은 사진의 아름다운 포착과 문장의 미려함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임창연 시인 문학평론가

카테고리 없음 2024.09.15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이혜선 시집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혜선 딸을 팔고 백원을 받은 그 엄마, 뛰어가 빵을 사 와서 입에 넣어주며 '평생 배 곯린 것 용서해라' 통곡했다지요 어떤 아이는 날마다 풀죽만 먹다가 생일날 아침 흰밥 한 그릇 앞에 놓고 그건 밥이 아니라고 '밥 달라' 울었다지요 풀죽을 밥으로 알고 사는 그 아이들, 풀죽도 못 먹어 맥없이 죽어가는 아이들, (어린 새끼들 굶어 죽는 것 차마 볼 수 없어, 목숨 걸고 국경 넘어 온 새 나라 새 땅, 거기선 또 어떤 커다란 입이 벌리고 있나요?)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 나온 것 미안하다 살 빼려고 비지땀 흘리며 사우나에 들어앉아 미안하다 먹다가 내 배부르다고 날마다 쓰레기통에 음식 버려 미안하다 같은 하늘 같은 핏줄 형제들 굶어 죽어도 모른 척해 미안하다 혼자만 뜨신 방..

카테고리 없음 202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