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박운식 오늘도 괭이를 둘러메고 밭에 간다 질긴 뿌리의 나무들이 잡풀들이 밭둑을 넘어 슬금슬금 먹어들어 온다 나무뿌리 풀뿌리를 찍어내야지 젊은 놈들은 다 대처로 떠나고 무디어진 팽이로는 어림없구나 그래도 이 밭을 지켜야지 잠시 먼 하늘 바라보는 사이에도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도 내 발바닥 밑으로 담배 연기 속으로 철사보다 질긴 뿌리들이 기어들어 온다 치켜든 괭잇날이 부릅뜬 두 눈이 나무뿌리를 힘껏 내리찍지만 서러움만 가득 밭뙈기에 쌓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골방에서 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 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 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 있다 어떤 것은 가마니에 독에 있는 것도 있고 조롱박에 넣어서 매달아 놓은 것도 있다 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