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의 시간
박 잎
마음의 미로를 따라 흘러왔어. 비,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빗길을 스쳐왔지, 바람의 길, 바퀴도 비에 젖어 한없이 축축했고 ... 머리칼을 흩날리며 바다에 닿으니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어. 이 격류, 나는 황급히 커피점으로 들어갔어. 빠른 템포의 재즈가 흐르고 있었지. 차표가 흐물흐물 젖어 있더군. 몽당연필도 짙은 물기 머금고.
맥주 한 병을 다 마신 후, 뜨거운 커피를 들고 휘청이며 걸어갔어. 순식간에 온몸이 흠뻑 젖고, 손이 풀려 커피를 쏟고 말았어. 모래알에 스며들던 여름 커피향,
미친 듯이 퍼붓는 해변의 빗줄기. 환청으로 다가오는 잔꽃들의 아주 낮은 중얼거림. 모래밭을 걷고 또 걸었어.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했었나 봐, 모래성은 허물어지고 플라스틱 작은 삽이 꽂혀 있었어. 파아란 장난감 양동이가 비바람에 뒹굴고, 등 뒤로 솔향이 천천히 밀려왔지, 폭우를 맞으며 조개를 주웠어. 깨진 조개 조각을 움켜쥐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지.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어. 나는 맨발로 바닷가를 걷고 있었고, 해초들이 뒤엉겨 눕고, 갈매기들 점처럼 앉아 있었어... 그냥 미치듯이 행복했어. 이유를 알 길 없어 더 행복했어, 젖은 모래알에 맨발을 묻고 바다를 바라봤어. 해안 경비를 도는 아저씨가 춥지도 않냐며, 아직도 안 갔냐며 혀를 찼었지.
속초에서.
몇 년 전 큰 죄를 지은 속초에서,
-모래알의 시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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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잎 시인의 수필집 <툰드라백조 깃털을 아세요?>를 읽었다. 시인의 감성이 묻어 나오는 수필은 작가의 경험과 직관 사유와 깨달음이 동행해서 산뜻하고 상쾌하다.
시를 잘 쓰는 시인들은 산문도 함축미가 강하게 드러나 운율감을 느끼게 한다.
산문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선이 머무는 행간들에서 많은 생각들을 내려놓았다.
나도 내년엔 산문집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