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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습성-임동윤 시집

잠시라도 임동윤 함박눈이 아파트에 내리고 있습니다 꽁지 짧은 새들이 와서 먼저 밟고 갔습니다 눈향나무 둘레가 바닥까지 휘어져 있습니다 쏟아지는 눈발이 야만의 뼈를 덮고 있습니다 물 쟁이는 나무들의 소리가 한창입니다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지우고 갑니다 오직 흰 것 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안 보이는 것이 더 잘 보이는 순간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람의 넓이 사람의 마음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해 뜰 무렵 나무의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정오엔 짧아졌다가 저녁에 다시 길어지듯이 사람에게도 그림자는 자주 바뀝니다 해가 진 후, 그림자는 어둠에 사무쳐 어둠을 자신의 슬픔처럼 껴안습니다 서로 만나고 어떤 일과를 수행할 때도 나는 나만의 그림자를 만들곤 합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만드는 그림자 그 ..

카테고리 없음 2023.12.07

당신에게 도착하지 못한 말-강재남 시에세이

강재남 시인의 시에세이 '당신에게 도착하지 못한 말'은 시인이 좋아하는 시 60여 편의 시에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짧은 에세이로 풀어내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경남일보에 연재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한 강재남 시인은 좋은 시를 빌려주신 시인들께 다정한 마음을 전하며 나비가 되어야겠다고 밝히고 있다. 본문에는 김춘수의 가을 저녁의 시, 김남권의 목련 그림, 문태준의 망인, 고경숙의 첩실기, 천양희의 너에게 쓴다, 안도현의 나비의 문장, 정희성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신경림의 귀로, 복효근의 어머니 여자, 손택수의 거미줄, 문인수의 달북, 김인육의 사랑의 물리학, 허수경의 기차는 간다, 곽재구의 또 다른 사랑 등 주옥 같은 시들이 강재남 시인의 삶의 흔적들과 어우러져 시 속에서 또 다..

카테고리 없음 2023.12.06

인사동에서 만나자

나의 청년 시절 첫 직장은 인사동에서 시작했다. 신생 출판사에 입사하여 영업 일부터 배웠다. 인사동 사거리 붉은 벽돌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출판사로 가기 위해서 늘 인사동을 지나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었다. 지금처럼 번잡하지도 않았고 밤이 되어도 조용했었다. 그리고 다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나들었던 찻집과 술집도 세월의 어깨에 지쳐 문을 닫았거나, 주인이 바뀌어 그 흔적 조차 낯설다. 요즘 들러 보는 인사동의 풍경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온통 외국풍의 음식점과 비싼 찻값, 음식값 때문에 낭만과 인정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 오히려 종로3가나 관철동으로 발길을 옮기곤 한다. 덕주출판사에서 발간한 '인사동에서 만나자'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인사동의 명소와 예술..

카테고리 없음 2023.12.05

척하면 착-유인자 동시집

매미 날리기 유인자 꼼짝없이 공부를 했더니 귀에서 매미 소리가 난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농구대에 공을 넣으며 매미를 한 마리씩 꺼낸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귀에서 놀던 매미들이 다 날아간다 귀가 뻥 뚫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뒤집기 아기가 막 느낌이 왔나 봐요 어깨를 세우고 다리를 박차며 힘껏 콧바람을 날리니 하늘이 훌떡 넘어가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놈 참 안 간다고요 안 가요 안 가 더 놀다 가요 더 놀아요 더 놀아 엉덩이 뒤로 빼고 팽팽하게 할머니와 줄다리기 하는 줏대 있는 강아지를 봐 휙, 고개마저 돌리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유인자 시인은 강원도 소양 호수 근처에 살며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들과 교감하며 아름다운 동시를 풀어낸다. '척하면 척'..

카테고리 없음 2023.12.04

살다 보면/김남권 시 김은성 작곡 노래

살다 보면 김남권 살다 보면 그냥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꽃피는 날 있을 거야 바람이 불어와 온통 가슴을 흔들어 놓고 갈 때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언제가는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되어 있을 거야 강물이 소리 없이 흘러 바다로 가는 동안 네 가슴의 슬픔을 안아 줄 거야 살다 보면 그냥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별빛인 날 있을 거야 어둠이 밀려와 온통 눈 앞을 가려 놓고 갈 때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언젠가는 향기를 드리우는 꽃밭이 되어 있을 거야 강물이 소리 없이 흘러 바다로 가는 동안 네 가슴의 상처를 안아 줄 거야 살다 보면 그냥 살다 보면 눈 녹듯이 그냥 살아질 날이 있을 거야 바람이 불어도 꽃잎이 지지 않고 어둠이 몰려와도 가로등 불빛 환한 그런 날 있을 거야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살다 ..

카테고리 없음 2023.12.03

굿피플. 우리 함께해요

굿피플 지난 5년간의 기억, 벌써 5년이 지났네요 난치병 어린이 수술 지원을 위한 후원, 매달 조금씩 자동이체되지만 작은 힘이 모여서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이 꽃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와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한 지원 단체 월드쉐어도 후원하고 있습니다 연말이 가기 전에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12.02

당신이라는 이름의 꽃말-정성환 시집

뜨거운 눈이 내린다 정성환 차창에 악착같이 들러붙는 눈발 보며 차마, 브러시로 그 지난한 흔적 지울 수 없었다 차가운 몸 뜨겁게 던지는 눈발들을 보다가 악착같은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이 눈이 그칠 것을 안다, 우리 삶처럼 그럼에도 거룩한 생활의 세상에 한 몸 으깨어 쓰러지더라도 내리고 내려서 남모를 순정의 알갱이로 매달려 살다가 꾸벅꾸벅 졸린 듯 사라진다 진정으로 산 채로 쏟아지는 저들에게 한 번쯤은 붙잡혀. 철저히 고립되어 찬미하듯 새하얀 도화지 덮어쓰고 있다가 봄 되면 눈물자국 없이 태어나고 싶다 36하고도 영점5가 더해지는 나는 저들보다 더 뜨거워야 낫지 않는가 두려움 없이 저절로 살아지는 세상은 없다 그것 또한 절절한 힘임을 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룡..

카테고리 없음 2023.12.01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배기환 시집

도시의 매너리즘 배기환 각양 각색의 자동차를 사육하고 있는 거대한 이 도시의 거리로 나서면 봄 햇살 같은 열정을 묻어둔 채 지리멸렬한 시간을 갉아먹는 초침 소리가 요란하다 삶의 덫에 걸린 행인들이 비밀번호를 입력시키며 무표정하게 걷고 있는 횡단보도가 나를 뛰어 건너고 18층 건물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바람 속엔 살을 익혀버릴 듯한 따가운 햇살이 눈을 부릅뜨며 카오스를 물어 뜯어버릴 것이라고 잔뜩 벼르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 속의 가변차선 안으로 빨간색 에스 유 브이 자동차 한 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가속 페달을 힘껏 밟기 시작하였다 하늘에는 격납고를 막 벗어난 항공기 한 대가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비실비실 웃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간은 서서히 기억의 수레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과속방지..

카테고리 없음 2023.11.30

오래된 선물-이정순 동화집

이정순 아동문학가의 마음이 자라는 효 이야기 "오래된 선물"이 출간되었다. "할머니, 오늘 자고 갈 거예요" "할아버지의 반지" "나는 형아다" "오래된 선물" "할머니의 사랑 만두" 등 5편의 동화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요즘 저는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아이들이 잘 자라서 그동안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 부모들은 참 행복하겠지?'라고요. 누구든 사랑을 받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서로 나눌 때 기쁨은 배가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효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배우고 익히며 효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도록 해주고 싶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현재 초등..

카테고리 없음 2023.11.29

가을은 입술에서 온다-전가은 시집

생명에로 서 전가은 비릿한 냄새가 난다 왈칵 쏟아진 육삭동이 양수 끌어올린 언덕바지 청매화 피었다 광목에 싸여 어디론가 사라졌던 애린 것이 아장아장 걸어와 물오름 달 아른거릴 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기억의 조각들 다부지게 꽃 피울 줄이야 햇살 다독이며 꽃잎 사이 오가던 노랑나비 한 마리 살포시 꽃잎인 양 어깨에 앉아 나부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통증 다섯 살 동생을 데리고 엄마가 떠나던 날 뒷산 비둘기 꾸륵꾸륵 울었다 참꽃은 피어 산기슭이 환하고 부드럽고 화창한 봄바람 나뭇가지를 감돌았다 재산이라고는 아버지 쌓아둔 도박판 빚더미 가진 것이라곤 똥밖에 없다 똥이라도 가져가라 빚쟁이들에게 호통치던 할머니 할머니가 되어 마디마다 울음 앉혀놓고 아파 아파하는 엄마 옆에서 나도 엄마 없이 꾸륵꾸륵 ..

카테고리 없음 2023.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