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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과 큐브-김춘리 시집

칼 김춘리 내 귀에는 갈색으로 변한 칼자국이 남아 있다 칼자국이 서로의 귀를 잡고 있다 푹 익은 사과를 깎으면 외로움이 없어질까 사과를 먹고 나면 칼이 사라질까 더 많은 귀가 필요한 시간에는 사과를 사러 가고 지루한 날에는 칼과 사과를 잡아당긴다 둥근 그림자만 남기고 사과를 먹는다 그림자는 젓가락으로 집어라 썩은 사과로 어떻게 젖은 눈물을 통과할 수 있을까 사과 대신 탁자를 선택했어요 외로움이 익는 동안 탁자를 사과라고 부르거나 시계를 그림자라고 부르거나 썩은 사과를 도려낸 손가락으로 칼을 숨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념일 해변에 있는 소돌 슈퍼는 애니가 좋아하는 가게다 밀가루와 설탕을 할인해 주기도 하고 방울토마토에서 방울 소리가 나면 구름 위의 장미를 주기도 하는데 반값에 세일하는 주걱을 사..

카테고리 없음 2023.02.07

도깨비들의 착각-김태범 시집

그래도 봄은 온다 김태범 세상이 멈춰 버린 봄날 홀로 텃밭으로 나와 부지런히 이랑 들이고 포근하게 비닐 씌워 한 알 한 알 옥수수 심었다 사월의 찬바람은 자꾸만 봄날을 희롱하지만 이랑 속 한여름의 꿈은 하루가 다르게 어둠을 뚫는다 바람의 심술에 애태우며 몇 날 잠을 설치다가 기어이 어둠을 박차고 말끔하게 눈을 뜬 새 아침의 환희를 본다 코로나로 빼앗긴 봄날이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람쥐의 건망증 용케 찾았나 보다 삭풍에 눈발이 흩날리는데 배고픈 다람쥐 한 마리 마른 숲에서 낙엽 더미 뒤적이더니 꼼지락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다 용케 찾은 도토리 한 알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다 툭 투둑 가을이 떨어질 때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며 겨울 땀을 미리 흘린다 여기저기 열심히 곳간을 감춘..

카테고리 없음 2023.02.06

하늘에서 울다-배재경 시집

여배우 송혜교 배재경 인기배우 송혜교를 아시나요? 투명한 눈빛이 호수를 담듯 맑은 여배우 도톰한 입술로 뭇 남성들의 심장을 가로지른 여배우 송중기와 결혼해 부러움과 미움을 샀던 여배우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로 인기를 누렸던 한국의 여배우 송혜교가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당신은 본적이 있나요? 그 송혜교가 그냥 배우가 아니구먼유 그 송혜교가 이쁜 얼굴로 인가나 팔아먹는 배우가 아잉기라요 그 송혜교가 이것저것 인기작만 잡아먹는 공룡이 이니당께요 그 송혜교가 여의도 시정잡배들과는 참말로 다르메요 왜냐고요? 보세요 대한민국 정부조차 외면해온 중국 충칭 임시정부 역사유적지 한글 홍보물 제작 일본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자동차 광고모델 거절 봉오동 전투 100주년 기념 카지흐스탄 크질오르다주립과학도서관에 홍범도 ..

카테고리 없음 2023.02.01

시삶 제5호-부산문학인길벗 무크지

부산문학인길벗 무크지 '시삶' 5호가 나왔다 이번 문집에는 심소정의 동화 호랑이 동굴을 비롯해서 시 특집 '내 시 한편에 남긴 나의 삶' 편에 우아지의 작가는 언제나 혼자이며 또 여럿이다, 조말선의 너는 토와 토 사이에 갇힌 마, 송진의 이 세상은 무엇으로 둘러싸여 있는가, 고훈실의 어느 봄날의 파국, 김석이의 음악의 집, 김려의 그곳에 온전히 있기 등이 시와 시인의 삶을 오롯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집 평론엔 오늘의 한국시 성찰과 전망 구모룡의 현대인의 삶과 시의 효용, 송용구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한국시의 사회적 역할과 전망, 김남영의 시야, 어디냐 등이 시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허정의 평론은 다시 읽는 길벗의 시를 통해 코로나 담장을 넘어가는 왁자지껄한 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번호의 서문에서 신진..

카테고리 없음 2023.01.31

중심의 위치-복효근 시집

무덤 복효근 더 이상 덤이 없는 곳 그러니까 이 생은 덤이라는 뜻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초승달 초저녁 초승달 하도 이뻐서 나가서 보고 왔다가 저녁 먹고 또 나가서 보고 왔다 잠시 후 또 달 보러 나간다고 했다가 혼났다 아직도 내가 그 여자 생각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은 죄 좀 부족했던 그 아이 내 눈총깨나 주었는데 어느새 자라서 5일장 생선 좌판가에 앞치마 두르고 아는체합니다 생선 사러 갔다가 차마 못 사고 둔전거리다 돌아오는데 생선만도 못한 내 선생질이 소금 뿌린 듯 쓰라렸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핸드폰 단언컨대 핸드폰만 버리면 단 사흘만에 다 잊을 수 있다 너, 그리고 나까지 완벽하게 신이 사라질 자리에 무엇이 남겠는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미 늙은..

카테고리 없음 2023.01.30

바람과 놀다-나호열 시집

봄비 나호열 알몸으로 오는 이여 맨발로 달려오는 이여 굳게 닫힌 문고리를 가만 만져보고 돌아가는 이여 돌아가기 아쉬워 영영 돌아가지 않는 이여 발자국 소리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면 문득 뒤돌아 초록 웃음을 보여주는 이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토마스가 토마스에게 사랑해 이 짧은 시를 쓰기 위해 너무 많은 말을 배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랑의 온도 사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뜨거워도 물 한 그릇 데울 수 없는 저 노을 한 점 온 세상을 헤아리며 다가가도 아무도 붙잡지 않는 한 자락 바람 그러나 사랑은 겨울의 벌판 같은 세상을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화원으로 만들고 가난하고 남루한 모든 눈물을 쏘아 올려 밤하늘에 맑은 눈빛을 닮은 별들에게 혼자 부르는 이름표를 달아준다 ..

카테고리 없음 2023.01.29

꼭,지켜야 할 일-임승훈 시집

아기 풀꽃 임승훈 언덕배기 자갈길 돌아 잡초와 가시덤불 사이에서 배냇짓하는 손녀의 작은 눈꽃 가시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등을 다독거려 주는 산들바람에 햇살이 따라 들어와 웃고 있다 얼굴이 작아서 앙증맞은 외꽃같은 고향초 천연덕스럽게 졸고 있다가 안 그런 척 고개 숙이고 있네 작은 씨방에 숨어있던 꽃술이 마중나와 햇살의 웃음을 물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다림의 끝에서 곧게 뻗어 있는 나무마다 흘러내린 눈물 자국 상처 난 자리 멍울 자국에 매달린 은방울 거두지 못한 아픔이 눈물이 되어 햇살에 반짝인다 바람 부는 날에는 가루로 날아서 수정하는 날 나비처럼 멀리 날아가는 날 그날을 기다리는 나무 잣 익어가는 콩트 소리에 솔방울에 다가가는 다람쥐 귀를 쫑긋 세워 엿듣고 있다 단단한 솔방울 속에 몸을 ..

카테고리 없음 2023.01.28

페이드 인-박 순 시집

미늘 박순 당신에게 갇혀서 길을 걷다 보니 길을 잃었다 당신을 뒤쫓는 당신의 거울 당신을 피해 도망치듯 뛰어가 숨었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새는 젖은 날개를 포개며 잠을 청하고 있다 울음을 꾹 참고 있는 꽃망울들 굶주린 산짐승의 서늘한 눈빛이 빛나는 시간 어둠의 소리들이 모여들고 있다 뇌는 이미 암전이다 두 눈은 깜박거리지 못한다 숨을 토해내고 있는 불규칙한 시간들 목을 더 움츠려, 목이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기억 속의 문장들이 내 길을 가로막는다 물방울처럼 부호로 튀어 오르고 있다 발버둥치며 울었던 시간은 또, 빗물에 씻기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녕 그림자를 썰며 다가온다 또각또각 소리 들린다 나를 붙드는 벼랑 잭나이프를 들이댄다 입을 틀어막고 두 손을..

카테고리 없음 2023.01.27

나호열의 시읽기-4인4색 토크 큰서트

'나호열의 시읽기' 4인 4색의 시를 탐하다 공감 콘서트가 25일 오후 3시,도봉구민회관 편지문학관 프로그램실에서 열렸다 나호열 시인의 진행과 해설로 서혜경. 조하은 최경선, 최윤경 시인의 시집 속의 시를 주제로 토크 콘서트가 이어졌다 경희대학교 시원문학회에서 오랜 시간 시로 교류해 온 시인들이 시집을 상재하고 상식과 감정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기억들을 쏟아내는 자리였다 나호열 시인은 상식과 감상과의 싸움을 부연해 보면 상식의 파격, 감상의 환상 전복, 이렇게 풀이해 볼 수 있겠다고 밝히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부단한 인식의 훈련과 자기성찰에서 맑게 닦여진다고 강조한다. 일시적인 감정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 법이어서 깨달음이라고 까지 할 수 없어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운..

카테고리 없음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