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의 시읽기' 4인 4색의 시를 탐하다
공감 콘서트가 25일 오후 3시,도봉구민회관 편지문학관 프로그램실에서 열렸다
나호열 시인의 진행과 해설로 서혜경. 조하은 최경선, 최윤경 시인의 시집 속의 시를 주제로 토크 콘서트가 이어졌다
경희대학교 시원문학회에서 오랜 시간 시로 교류해 온 시인들이 시집을 상재하고 상식과 감정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기억들을 쏟아내는 자리였다
나호열 시인은 상식과 감상과의 싸움을 부연해 보면 상식의 파격, 감상의 환상 전복, 이렇게 풀이해 볼 수 있겠다고 밝히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부단한 인식의 훈련과 자기성찰에서 맑게 닦여진다고 강조한다. 일시적인 감정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는 법이어서 깨달음이라고 까지 할 수 없어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운, 내가 이 세상에서 아름다워져야 할 이유를 찾는 일은 무망한 일인 것 같아도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참다운 가치이며 작가나 시인은 그 참다운 가치를 성경도 아니고 불경도 아니고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라고 토크 콘서트를 여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자리에는 최경애 시낭송가 최영남 화가 김석흥 시인 박 순 시인 김태범 시인 임승훈 시인 등 삼십 여명이 참석해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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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의 대표시
꽃으로 핀 신발들
서혜경
모양이 다른 신발을 모아
활짝 핀 꽃으로 만든 작품을 보았다
누가 걸어온 길인지
그 길 위에서
혹 주저앉은 적은 없었는지
신발들의 사연이
꽃으로 피었다
어느 무도회에서
춤을 추던 신발인가
어떤 섬에서
조약돌을 밟다 벗어 놓았던 신발인가
단풍잎 떨어지면 붉게 물들던 신발
꿈길을 걷던 신발
개미를 밟았던 신발일지도 몰라
얼룩진 신발들은 나비를 모으고
주소가 달랐던 신발들이
코를 마주하고
둥근 꽃으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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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원
조하은
오라비는 둘둘 말은 선데이서울을 바지 뒷주머니에
반쯤 집어넣은 채 불쑥 나타나곤 했다 겉장이 나달나달해진 그 속에는 뭔지 모르지만 알 수 없는 간질간질한 것들이 숨어 있었다 가슴과 허벅지를 다 드러낸 여자가 다리를 꼬고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든지 머리를 빵빵하게 틀어 올린 흑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연재소설이라든지
가끔 친구들을 모아놓고 소공녀나 퀴리부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이들은 그녀들의 칼라사진 보다는 가슴 볼록한 여자들의 몽롱한 눈빛을 더 흥미로워 했다
공사판을 떠돌던 오라비가 금방 책 속에서 나온 듯한 여자를 데려오면서 나의 은밀한 독서의 방은 문을 닫고 말았다
못다 쓴 일기의 마지막 장처럼 동공에 일렁이던 부호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마침표를 찍지 않은 문장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얼마간은 불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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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독 톡 톡
최경선
콩꼬투리 튀는 소리
풀벌레 낙엽 밟는 소리
꽃송아리 벙그는 소리
사운거리는 떨림
곳곳에서 들려오는데
아침 햇살 요요하게 펼쳐지자
토도독 톡 톡
비로소 보이는 반짝거리는 물빛
참새 날아들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둥근 모서리
아니
세상의 가장자리에
오롯이 맺힌 저 통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다
참새 포로롱 날아가는 사이
흔들린다
생의 완성을 향해 날기를 꿈꾸었을까
전력을 다해
세상 중심으로 날아드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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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에 대하여
최윤경
낯선 표정들이 서성이는 승강장
각자의 삶에 쫓기는 곳에서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며
종착역에서 회귀하는 열차처럼
어쩌면 우리도 다시 돌아와 앉은
또 하나의 자리가 아닌지
정해진 순서가 없는
이별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생의 꼭지점에서 독주를 대신하듯
전철의 의자에 몸을 실으면
벼리어 온 생각들이
엉킨 선로가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