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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소리-전하연 수필집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미인美人이라고 한다. 여기서 용모容貌란 단순히 얼굴만이 아닌, 전신 및 차림새까지를 포함하리라. 그러나 오늘날 미인의 기준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세련된 서구적 얼굴로 한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돈 없고 교양없는 여자는 봐줄 수 있어도 얼굴 미운 여자는 못 봐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말해주듯, 요즘 미인의 기준은 내면의 아름다움은 무시된 채 지나치게 외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는 미인을 보는 기준이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단순히 여성미 그 자체만을 보기보다는 온화하면서도 덕성이 담긴 얼굴을 미인으로 쳤다. 김은호 화백이나 김기창 화백의 미인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미 넘치는 미인들은 청초하면서도 단아한, 그러면서도 기품과 덕성까지 넘쳐 보이는 모습이다. -본..

카테고리 없음 2023.04.18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비가 왔다-김경린 시집

풍경의 탄생 김경린 바다를 옮기는 손이 너무 크다 맥주캔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엑스트라 흐르는 동작을 기억하는 손 고양이 한 마리가 세워놓은 절벽 쪽으로 사라진다 파도는 아직 도착 전이고 등대를 활짝 열어 젖힌 저녁 다리 없는 의자는 계단이 된다 절벽 위에 선 관찰자의 입장으로 숲이 된 바다는 나무를 수장시키고 물감이 흩어놓은 억새는 불빛을 키운다 점, 점, 점, 섬이 되는 섬 하늘 없는 구름처럼 손을 펼치면 질서없이 놓여 있는 파도가 뜯긴 봉지 속 그래커의 모습으로 부서진다 바다가 손안 가득 푸른 물감으로 쏟아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거룩한 혀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이가 빠진 자리에 나무를 심은 아이는 잠든 이빠리를 깨우고 주인 없는 무덤을 굴리며 간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빨리 지퍼를 ..

카테고리 없음 2023.04.16

윤동주 문학관 가는 길

윤동주 문학관 가는 길, 경복궁역에서 내려서 삼십 분 넘게 언덕길을 올랐다 자하문 터널 입구에서 오른쪽 빌라촌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청운문학도서관이 나온다 도서관 옆길 데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영산홍이 만발한 꽃길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의 끝에 북한산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 비탈길을 삼백 미터쯤 내려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나온다 실내촬영은 금지다, 별이 된 시인의 육필원고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15

늦게 오는 사람-이 잠 시집

히말라야 소금 이 잠 청정이란 말은 조만간 국어사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바다가 오염되었으니 생선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생선만 그런가 내가 나를 더럽힌 날들은 또 얼마인가 인터넷을 뒤져 히말라야 소금을 주문해 놨다 아주 오래전 바다 밑바닥이 솟아올라 산맥이 되고 그때부터 바닷물이 버릴 거 다 버리고 히말라야에 남긴 돌덩이 산을 헐어 국을 끓여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을까 손안에서 차돌처럼 반짝인다 흠 없는 몸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돌을 씹어 먹는다 청정하다는 히말라야 산을 입에 물고 녹인다 버릴 거 다 버리고 심심해진 소금 바위 굴러 내려 내 부끄럼들, 사무침들 올올이 녹아내려 창해만리 바닷물로 출렁일 때까지 두 번째 살아 보는 것처럼 한 번을 사는 거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끝없는 장..

카테고리 없음 2023.04.12

계간 P.S 시와징후 창간기념식을 열다

계간 P.S 시와징후 창간기념식을 개최했다 4월 8일 토요일 오후 4시 종로3가 한국인성개발원 강당에서 개최된 행사에는 문단의 원로를 비롯한 신인작가, 문예지 발행인, 한국문학방송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 자리에서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 선생님은 축사를 통해, 시를 쓰는 사람들의 진정성에 대해 덕담을 남겨 주셨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시인은 한국 문단의 새로운 징후가 발견되었다고 격려사를 주셨고, 국수가 먹고 싶다의 이상국 시인은 생전 처음 문학행사에 참석했다며 좋은 문예지로 성장해나갈 것을 당부했고 올해 시집 귀안에 슬픈 말있네를 발간한 이경림 시인은 늦은 시간에도 참석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시의 경계를 넘는 시인들이 되기른 바란다고 강조했다. 고..

카테고리 없음 2023.04.10

나비질-김나비 시집

물방울 키우는 여자 김나비 손가락 사이, 물방울 모양 물집이 올라왔다 투명한 돔을 만지자 부푼 막 속으로 팔이 들어가고 어깨가 들어가고 몸이 쑥 딸려 들어간다 안온한 태막이 나를 감싼다 고요가 출렁이는 양수 속 반투명한 옆구리에 설핏 비치는 늑골, 붉은 얼굴에 까마중 같은 눈을 달고 거꾸로 매달려 둥글게 손가락을 빨면 탯줄 타고 스며오는 당신 목소리 봄볕 되어 두런두런 등을 쓸어 준다 언제부터인가 손가락 사이엔 당신의 뿌리가 자라고 있다 몸에 혈류처럼 흐르는 당신을 닮은 피부 짜내면 짜낼수록 멍울로 번져가는 야윈 뒷모습 잘라낼 수 없는 인연의 포자가 곳곳에 발아한다 혼자 견뎌야 하는 밤을 남겨두고 내 생의 바깥으로 등불을 들고 떠난 당신 별들이 외로운 운항을 하는 날이면 내게로 와 밤새 푸르게 뒤척이는,..

카테고리 없음 2023.04.03

계간 P.S 창간호, 빛이 되다

계간 P.S 시와징후 창간호를 받았다는 분들의 답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수고했다, 힘들텐데 어려운 일한다, 책 내용이 좋다, 박열 시인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읽을거리가 많다. 앞으로 기대된다, 등등 전화와 문자로 격려의 말씀을 보내주고 계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정기구독과 정회원 특별회원 후원회원 가입을 해주시고 주변에 소개까지 해주셔서 정기구독 회원 수가 쑥쑥 늘어나고 있다. 다음주 토요일 오후4시 창간 기념식까지는 더 많은 분들의 성원이 이어질거라 믿는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여름호를 준비해야겠다. 창간호 재판을 찍었다. 다시 봄은 오고 한국 문단의 시의 징후가 시작되고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3.31

평창 장날, 봄이 오다

오늘은 평창 장날입니다 5일10일, 한 달에 여섯 번 열리는 봄맞이 장터에는 어린 묘목들과 상추 고추 달래 모종도 나오고, 돌미나리도 나왔습니다 들기름에 갓 구운 김도 있고, 채소와 과일, 도너츠 붕어빵 족발 군것질 과자 옛날 통닭 호떡도 있네요 날씨가 포근해서 어르신들이 버스타고. 많이 나오셨어요 핸드폰이 없던 시절, 장에 나와야 이웃 마을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요 누구네 첫째가 결혼을 한다더라, 누구네 바깥 양반이 돌아가셨다더라 등등, 이제는 그것도 옛일이 되어버리고 장터에서 만나 막걸리 한 사발 나누는 사람들도 보기 드물어졌네요 세상이 좋아지는 만큼, 사람의 정은 멀어지나 봅니다 아니, 너무 돈이면 다인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요?

카테고리 없음 20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