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저녁에박명현 날이 저물었다어둑어둑한 수묵화를 그리는데푸른 별빛이 내려와얼어붙은 몸에 불꽃을 당긴다대문을 밀치고 들어선 집안엔어둠이 점령군처럼 밀려들어와숨죽이고 앉아 있다엊그제만 해도국수를 동 솥에 끓여도내게 담겨진 것은 감자 몇 쪽이었는데이제는 그림자마저 어둠에 묻히고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다까치설날이라고까지들이 몰려와 재잘거리는데어둠에 갇힌눈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누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지두 눈이 아리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꽃바람하늘은 슬픔이 결빙되었나 보다그리운 숨결들이 송이송이바람에 실려흩날리고 있다가슴에는 낮별들이 가득 돋아나고시간은 과거를 방치한 채앞으로 달려가고 있다내가 걸어온 흔적들은바람에 소리 없이 쌓이고이팝꽃 흩날리던 날이밥 같은 미소로 손을 흔들던너의 얼굴이 꽃바람을 지나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