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 저녁에
박명현
날이 저물었다
어둑어둑한 수묵화를 그리는데
푸른 별빛이 내려와
얼어붙은 몸에 불꽃을 당긴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선 집안엔
어둠이 점령군처럼 밀려들어와
숨죽이고 앉아 있다
엊그제만 해도
국수를 동 솥에 끓여도
내게 담겨진 것은 감자 몇 쪽이었는데
이제는 그림자마저 어둠에 묻히고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다
까치설날이라고
까지들이 몰려와 재잘거리는데
어둠에 갇힌
눈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누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지
두 눈이 아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꽃바람
하늘은 슬픔이 결빙되었나 보다
그리운 숨결들이 송이송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고 있다
가슴에는
낮별들이 가득 돋아나고
시간은 과거를 방치한 채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내가 걸어온 흔적들은
바람에 소리 없이 쌓이고
이팝꽃 흩날리던 날
이밥 같은 미소로 손을 흔들던
너의 얼굴이 꽃바람을 지나
내게 오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침을 여는 기억
꽃잎이 움트느라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다
별이 꼬리를 물고
흙냄새를 맡는 동안
희미한 기억속
날개를 펴고
바람을 가르며 일어나는 기억
지나간 시간 속에 남은
반짝이는 상처를
저 홀로 안고
꽃송이 가득 이슬을 묻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명현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은 고희를 기념해 출간되었다. 지난 팔 년 동안 변함없는 발걸음으로 시 창작 과정을 동행하며 시집 저녁 편지, 양재역 6번 출구, 등과 동인지 바느질하는 남자 외3권을 출간한 박명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종심의 시학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가야 할 시간들을 묵묵히 따라가는 삶의 여정들을 담담하고 깊이 있게 또 크고 작은 이미지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아내의 모습을 통해서 애잔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묘사하였고, 자식들을 향한 유언 같은 당부도 담겨 있어 아버지로 또 가장으로 살아온 생의 푸른 기억들이 오롯하게 숨 쉬고 있는 시집이라 할 것이다.
-김남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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