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송은숙팔꿈치 안쪽에 실핏줄이 터지듯 천천히 멍이 드는 저녁이다무의 발자국이 밭두둑을 넘어왔다무의 발자국은 서걱서걱 얼음 갈리는 소리를 낸다무를 깎는 소리가 그랬다매끄러운 얼음을 지치듯 껍질 밑으로 칼이 들어갈 때부엌문으로 무심코 하늘을 보다 낮달에 손을 베일 때껍질과 칼의 경계에 드는 소름껍질 밑으로 무의 실핏줄이 드러났다오래 동여맨 손가락처럼 하얗게 질려 있다집요한 서걱거림에 무가 제 몸을 열어 보았다빈집의 들창처럼 숭숭 바람구멍이 나 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너머의 너머창 너머, 담 너머너머는 너무 멀다고개 너머, 산 너머가려고 했는데, 가자고 했는데, 갈 수 있었는데너머는 넘어가 아니라서더 아득하고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보아야 보일 듯 말 듯한아지랑이 같아서고양이가 담 위에서 너머의 안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