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21

물의 발톱-심은섭 시집

기억의 주머니 -박수근의 심은섭 한 여인이 첫돌의 사내아이를 등에 업고 빨래를 한다 그녀는 아이의 손금 속으로 무단 침입하려는 험상한 빈곤과 북극의 바람을 방망이로 두들기며 개울물에 헹구고 있다 그럴수록 아이는 수탉이 불러들인 새벽으로 자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여인의 등은 인간 발전기이다 그녀의 등에서 생산된 단단한 모양이 등에 업혀 잠든 아이에게 온종일 충전되고 있다 그때마다 아이의 저녁이 밝아지고 조촐한 사주의 목록에 푸른 강물 하나 추가되었다 지금, 상수리나무 숲보다 더 울창한 웬 아이가 빨래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해일이 밀려오듯 속도에 중독되던 시간이 집어삼킨 그 여인의 흰 그림자, 그 아이는 기억의 주머니 속으로 그 그림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접시꽃 나는 그 꽃 ..

카테고리 없음 2024.05.31

파리가 돌아왔다-박미라 시집

나사論 박미라 '볼트와 너트'를 '나사'라고 일러줬다 뭐든지 다 알고 뭐든지 다 알게 했다 우산도 없이, 과꽃 모종을 들고 나서며 메밀 싹 같은 이슬비를 웃었다 세상이 떠넘긴 여러 개의 대명사를 지녔으므로 수시로 비틀댔다 틈만 나면 나사를 조이고 다녔다 부엌에도 창문에도 내 종아리에도 나사가 박혀 있었다 가장 많은 나사를 조이고 조인 그이의 몸에서는 입을 틀어막은 어떤 것들이 불씨를 사르거나 탁탁 터졌다 사르다가 만 불씨에 그을려 사계절 내내 캄캄했다 시난고난 견딘 과꽃이 환해지면 배실배실 웃고 다녔지만, 다섯 살에 보낸 어린 것이 별이 되었다는 건 믿지 않았다 도대체 그 많은 나사를 조이고 갔으면서 아직도 남았는지, 오늘은 내 손목에 나사를 조인다 이런, 그이가 두고 간 손이 내 손목에 달려 있었다 왜..

카테고리 없음 2024.05.30

세 번째 출구에서 우리는-서이령 시집

Delete 서이령 꽃, 메시지 그리고 너 소낙비가 내리는 창문이 그리워져서 눈을 감는다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네가 왔다 가는 것이 보이지만 문을 열면 무너질 것 같아서 (삭제)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는 너 먼 곳에 사는 너 한잔할래 허공에 잔 부딪치는 소리 들려 마음을 보여주겠다고 환하게 웃으며 내놓았던 꽃다발 (삭제) 하현달처럼 기울어가는 너 꽂잎 시들다가 떨어지고 있는데 기다리는 것도 한자리 술잔을 채우는 것은 찌르레기 울음소리로 남고 (삭제) 기억 속에 있는 너 술잔 속에 비친 나를 건져 올려 보아도 잊지 못하겠지 너를 (삭제) 지워도 지워도 다시 그 자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女子의 집 女子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고 말한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얼굴로 엉덩이를 맡긴 의자가 푹, ..

카테고리 없음 2024.05.29

요즘 입술-안이숲 시집

나비 경첩 안이숲 문틈에 나비 한 마리 다소곳 날개를 접고 있어요 놋쇠 장식으로 된 나비로 태어나 제대로 날아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이 여름을 건너 뛰려 하고 있네요 종손이라는 이름에 걸린 가문 한 채 간수하느라 공중을 떠돌아 잔잔한 이곳에 뿌리를 내린 당신 방문이 열릴 때마다 낮은 발자국 소리에 묻은 녹슨 고백 소리 들려옵니다 솜털이 시작되는 고향에서 나비 무늬 박힌 치마저고리 입고 의령장에 구경 가던 팔랑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날아오르던 어머니의 원행遠行엔 연지곤지 찍은 꽃들마저 고개를 숙였던가요 얘야! 시집와서 빗장을 지키는 게 평생의 일이었단다 느리게 접힌 쪽으로 아픈 고백을 쟁여둔 어머니 다음 생에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지 마세요 몇 겹으로 박제된 풍장의 어머니 쇳가루 떨어지는 서러운 날갯짓 ..

카테고리 없음 2024.05.28

대명사들-이송희 사설시조시선

눈보라 이송희 당신의 계절은 으슬으슬 추웠어 어떤 말도 하지 못한 눈발이 퍼부은 날, 빈속을 헤집고 다닌 해고 문자 알림 소리 밤새도록 휘날린 한기에 떨었지 문밖에 선 채로 눈사람이 되었다가 눈 밖으로 밀려날까 얼음이 되었다가 입 안에 머금은 채 울먹울먹 삼킨 말들 가루가 된 시간들을 탈탈 털어 마셨어 아이는 집안에서 홀로 울고 있었어 기한을 훌쩍 넘긴 독촉장을 모아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털어 넣는 알약들, 흘러내린 슬픔마저 얼어붙은 밤이 가고 허공에 흩날린 꿈도 다 사라진 겨울 아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잔혹 동화를 읽다 결말을 알았으나, 덮을 순 없었어 거칠고 긴 줄거리는 이면에 가려져 괄호에 말을 가두고 두려움을 삼켰지 빛나게 해준다는 틀에 박힌 문구는 오히려 식상해서 오래전에 잊었어 입술이 ..

카테고리 없음 2024.05.27

시산맥 전국 행사 시상식

시산맥 전국 행사가 개최되었다 5월 25일 오후 4시,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된 이날 행사는 박민서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민의례에 이어서 문정영 발행인의 인사말과 내빈소개가 끝나고, 시산맥 시회 김필영 회장의 환영사, 장석주 주간의 축사와 최문자 시인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장욱 정하해 박민서 시인에 대한 제4회 시산맥 창작지원금 수혜자 선물 증정, 2024년 문학뉴스앤 시산맥 신춘문예 당선자 이언 김시홍 시인에 대한 상패와 꽃다발 증정, 제14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자 김이듬 시인에 대한 시상, 제4회 시산맥 시문학상 수상자인 강기원 이동우 시인에 대한 시상을 끝으로 두 시간의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이 날 행사에는 10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5.26

네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느냐

한강물이 휘돌아 지나가는 저기 저 돔 속에는 삼백 마리의 똥개들이 모여서 세금 도둑질을 한다 민생은 돌아볼 생각조차 않고 돈 있고 권력있는 놈들의 배만 불리고 눈치만 보는 버러지들만 우글거린다 억울하게 국민들이 죽어도, 집을 빼앗겨도 청년들이 억울한 삶을 살아도 그들을 지켜주기 위한 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십 프로도 안 되는 진돗개들이 자기 주장을 해보지만 눈감고 귀막은 똥개들은 도적놈의 눈치만 보느라 도무지 주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5.24

계간 시산맥 여름호 출간

계간 시산맥 여름호가 나왔다. 서영택의 권두시를 비롯해 리사원의 그림 둘 시 둘, 제14회 시산맥 작품상 김이듬의 수상작 입국장과 근작시 인사하러 왔어 외2편, 심사평이 수록되었고, 제4회 시산맥 시문학상 강기원, 이동우의 수상작과 근작시 심사평이 수록되었다. 제15회 시산맥작품상 후보작 홍일표 김재현 김행숙 강재남 손준호 시인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신작시 코너는 유안진 장석주 박일만 김규성을 비롯한 50여 명의 작품이 실렸고 김남권 시인의 '연어와 석류는 동족이다' 신작시가 발표되었다. 이밖에도 동시 다섯 편, 기후환경시, 시산맥이 찾아가는 시인 이 은, 언어의 질주 변윤제 서이교 최보슬, 누가 읽다 놓친 시 김형로 이 언 김시홍, 제3회 시산맥 청소년문학상 정지우, 해외시인 기획, 여행에세이 등 다양..

카테고리 없음 2024.05.23

문학기행 공주 마곡사, 무령왕릉

문학기행 2일차, 천사백 년 고찰 공주 마곡사에 들러 자장율사와 보조국사 지눌의 흔적을 따라갔다. 해탈교를 건너 법고루를 지나면 대웅보전을 만나게 된다. 연등이 걸려 있는 법당 마당을 지나면 계곡물이 염불 소리에 묻혀 돌돌돌 흐르는 동안, 무념무상의 시간을 건너갔다. 두번째 일정은 무령왕릉에 들렀다. 지금은 비록 왕릉엔 들어갈 수 없어서 모형 전시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당시의 출토 유물과 백제 문화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