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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대구잡으러 간다-조영희 시집

김남권 2024. 12. 24. 09:04

밤벌레

조영희

밤나무에서 연일 흰 폭죽이 터질 때
봄 안개는 향기롭고 부드러웠다
바들바들한 육질을 가진
달고 맛있는 안개의 음률과
바람의 선율을 타고
꼬물꼬물한 생각의 포자가 자라
벌레 이전에 꽃이 되고 싶었는지
꽃 속에 잠들면 꽃이 될 줄 알았는지
생명의 숙주란 벌레 아닌 게 없으므로
밤벌레가 되기로 했다
벌레들이란 달랑 몸뚱이 하나로
숨어 있기 좋은 점
숨어 씨 슬기 좋은 방이 필요해
어린 목숨일수록 튼튼한 배후와
단단한 기반이 목표
모두가 모두에게 신세지고 빚지는 세상
기생하고 살자면 눈치 채지 않게
살금살금 야금야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터널

빛이 눕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늘의
식은 이마를 짚으며
속삭인다

먼지마저 신열에 몸져눕는 시대
그대, 어둠이 없었다면
내 존재도 없는 거야

그늘이 빛을 일으켜 세운다
먼저 손을 내밀면
금세 환해지는 천국

스스로 갇힌 터널은
세상이 고통인 줄 알았다
서로 부둥켜안으면
하나의 출구로 동행하는 지름길이
열려 있는 줄 모르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덕도 대구 잡으러 간다

가덕도 앞바다 거센 물살을 가르며
서풍을 거슬러 오르는
들물 날물이 만나는 대항 세바지 포구
물살 소용돌이 칠 때마다
은빛 턱수염 회갈색 무늬로
참 어질게도 몰려오는 집단의 군무
생명변경선을 넘나드는
저 수천의 목숨들
북극 한랭의 깊은 바다에서
태평양에서 세상 한 바퀴 돌아보고서야
비로소 돌아오는 민낯들의 귀향
무거운 만삭의 몸은 서러워라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거센 물너울
넘고 또 넘어서 산란을 꿈꾸며
회귀하는 가덕도 대구,
추워야 제 맛이 나는 동지 무렵
희망이 되어
바람을 기다리는 노인에게
몸을 걸어오는
순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