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 5

하늘의 눈을 감기다-김남권

하늘의 눈을 감기다-김남궏 흰 쌀밥에 김 한 장 올려 밥을 먹는다 백설기인가 스노우 슬러시인가 극락의 혀가 입안을 맴돈다 담백하고 고소하고 짭잘한 풍미가 온몸에 퍼진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일 년에 한 번 생일날이 되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던 흰 쌀밥에 김 한 장, 집 나와 객지 생활을 하던 열일곱 살 무렵부터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한 달 내내 공장에서 일을 해도 방세 내고 교통비하고 수업료 내고 나면, 눌린 보리쌀 한 봉지도 사기 어려워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나는 분명 문명의 중심에서 살고 있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오래된 폐사지를 방황하는 들개처럼 하루를 살고 하루를 버텼다 오늘 아침, 반찬도 없는 양념 간장에 비벼 먹은 흰 쌀밥은 지난밤 폐사지에서 ..

너를 본 듯 바람이 분다-안용산 시집

뿌리로부터 안용산 밭둑으로 두 줄기 물이 서로 부딪쳐 억새를 키우고 있다 해마다 감자를 심으려 할 때 실하게 뻗어 들어온 뿌리와 부딪친다 뽑으면 뽑을수록 더욱 번지는 뿌리가 없다면 어떻게 그때를 알겠느냐 물이 넘쳐 발이 휩쓸려 나가고서야 보았다 너를 보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구멍이 하늘이다 깨졌다 뒈니 장독대 깨진 것들만 놓여 있다 깨지지 않았으면 벌써 사라지구 말았을 게다 그래서 너를 보았다 깨진 떡시루 엎어진 구멍이다 구멍만큼 단풍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간의 그림자 이제 잊을 때가 되었다 문밖을 나가다가 순간 어떤 그림자를 보았다 대숲을 흔들고 급하게 사라진 저것은 무엇일까 대숲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흔들릴수록 높이 올라가는 굴뚝..

카테고리 없음 2024.11.13

텅 빈 들판 텅 비게 보이는 것은-박운식 시선집

농부 박운식 오늘도 괭이를 둘러메고 밭에 간다 질긴 뿌리의 나무들이 잡풀들이 밭둑을 넘어 슬금슬금 먹어들어 온다 나무뿌리 풀뿌리를 찍어내야지 젊은 놈들은 다 대처로 떠나고 무디어진 팽이로는 어림없구나 그래도 이 밭을 지켜야지 잠시 먼 하늘 바라보는 사이에도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도 내 발바닥 밑으로 담배 연기 속으로 철사보다 질긴 뿌리들이 기어들어 온다 치켜든 괭잇날이 부릅뜬 두 눈이 나무뿌리를 힘껏 내리찍지만 서러움만 가득 밭뙈기에 쌓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골방에서 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 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 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 있다 어떤 것은 가마니에 독에 있는 것도 있고 조롱박에 넣어서 매달아 놓은 것도 있다 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

카테고리 없음 2024.11.12

김파란 시인 첫 시집 '헤어질 결심' 출판기념회

계간 시와소금으로 등단한 김파란 시인의 첫 시집 '헤어질 결심' 출판기념회가 지난 9일 오후3시 원주중앙청소년문화의집 공연장에서 개최되었다. 소극장 무대에서 개최된 출판기념회에는 가족과 지인, 동인 등 70여 명이 참석해 시를 낭독하고 축하의 인사말을 건네며 울고 웃는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가족들이 들려주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감동과 기쁨을 두 배로 키워주었고, 시를 낭독하는 관객들도 진심을 담은 감정이입으로 공감지수를 높여 행복한 소통의 시간이 되었다. 이날 오프닝 연주와 마지막 연주는 첼리스트 김연정 님이 영혼을 울리는 소리로 가슴을 울려주었다. 2부 순서는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집 속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내었고, 시를 쓴 작가의 솔직한 심정을 듣는 뜻깊은 시간으로 진행했다. 김파란 시인은 ..

카테고리 없음 2024.11.11

순포라는 당신-이애리 디카시집

이애리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 디카시집으로 나왔다. , , 에 이은 은 삶의 흔적들을 진솔하게 담아낸 시와 사진의 콜라보로 선보이는 디카시집으로 동해 바다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애리 시인의 순간적인 영감이 녹아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애리 시인의 디카시집 의 시 세계는 한마디로 그리움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할 수 있다. 시인은 시와 사진을 통해 그리운 것들의 실체를 찾아 나서고, 잊을 수 없는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 그리움의 흔적을 기억하고자 한다. 순포는 강릉 사천면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의 순포는 모든 그리운 것들의 대명사이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 각시 수달이 살아가고 있는 자연습지 보존구역이기도 하고 순포처럼 따스한 심장을 가진 모든 존재..

카테고리 없음 20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