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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본 듯 바람이 분다-안용산 시집

김남권 2024. 11. 13. 08:01

뿌리로부터

안용산

밭둑으로
두 줄기 물이 서로 부딪쳐
억새를 키우고 있다

해마다 감자를 심으려 할 때
실하게 뻗어 들어온 뿌리와 부딪친다
뽑으면 뽑을수록 더욱 번지는 뿌리가 없다면
어떻게 그때를 알겠느냐
물이 넘쳐 발이 휩쓸려 나가고서야 보았다

너를 보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구멍이 하늘이다

깨졌다

뒈니 장독대 깨진 것들만 놓여 있다
깨지지 않았으면 벌써 사라지구 말았을 게다
그래서 너를 보았다
깨진 떡시루 엎어진 구멍이다
구멍만큼 단풍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간의 그림자

이제 잊을 때가 되었다

문밖을 나가다가 순간 어떤 그림자를 보았다
대숲을 흔들고 급하게 사라진 저것은 무엇일까
대숲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흔들릴수록
높이 올라가는 굴뚝 연기 급하게 휘어지는 그때
햇살이 반짝 스쳐간다

그것은 잊으려 할 때마다 부는
바람이다
네가 바로 바람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30년 전 전주대사습놀이 농악에서 장원한 후, 뒤풀이에서 좌도시인들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그 속에 민들레라는 시가 가슴 뜨겁게 와 닿았다.
바로 장구잡이였고 금산문화원 국장이던 안용산 시인의 시였다. 밟혀도 일어서는 민들레의 강한 생명력을 노래로 엮어 지금도 종종 부른다.
우직스럽게 고향을 지키며 자연 속에서 시심을 두루 노래하며 유유자적한 모습이 옛 선비를 보는 듯하다. 씨를 심고 꽃이 피고 흔들리고 열매 맺고 모두 바람, 내고 맺고 달고 푸는 상모도 바람, 부딪쳐 부서지고 사라지는 물살도 바람, 바람은 희망이라고 노래한다.안용산은 참 행복한 장구잡이다.
-소리꾼 장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