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눈을 감기다-김남궏
흰 쌀밥에 김 한 장 올려 밥을 먹는다
백설기인가
스노우 슬러시인가
극락의 혀가 입안을 맴돈다
담백하고 고소하고 짭잘한 풍미가 온몸에 퍼진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일 년에 한 번 생일날이 되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던 흰 쌀밥에 김 한 장,
집 나와 객지 생활을 하던 열일곱 살 무렵부터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한 달 내내 공장에서 일을 해도 방세 내고 교통비하고 수업료 내고 나면, 눌린 보리쌀 한 봉지도 사기 어려워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나는 분명 문명의 중심에서 살고 있었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오래된 폐사지를 방황하는 들개처럼
하루를 살고 하루를 버텼다
오늘 아침, 반찬도 없는 양념 간장에 비벼 먹은
흰 쌀밥은 지난밤 폐사지에서 밤새도록 나를 내려다 보던 하늘의 눈이었다
-계간 시와소금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