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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김미량 시집

미량 김미량 어떤 맛일까. 미량은 궁금해요 내 혀는 몸 어디에도 닿지 않으니 꽃밭에 누워 하품하는 나를 맛볼 수 없죠 설렘은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우고 인기척에 놀란 벌떼와는 좀 다른 거겠죠 벌 같은 걸까요 내 몸엔 독성 미량이 함유되었으므로 조심하세요 주의사항은 늘 늦게 읽히죠 미량이어서 이마만 동그랗게 부풀었습니다 미량 보존의 법칙은 이마에도 유효합니까 입술이 누굴 환영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방금 누가 내 이름을 불렀습니까 미안, 트림이 나왔어요 하이, 박사님 머릿속이 흐린 날이 너무 많아요 극미량이라면서요 열 숟가락쯤 상상을 추가하면 여우처럼 보일까요 한 숟가락의 상상으로 얼마나 많은 늑대를 길렀는지는 말하지 않은 실험실에서의 하루 미량스럽다,는 말은 그쯤일 거라 생각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카테고리 없음 2023.11.06

인간 멸종-장승진 환경 시집

바람이 분다 장승진 성스러운 예언처럼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온전히 만들어 선물로 맡겨둔 지구를 어루만지듯 나뭇잎과 깃발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이여 미세한 진동만으로도 우리보다 더 빨리 우주를 지각하는 곤충들과 벌레와 동물들 그들이 보내온 오랜 경고에도 우린 애써 피하거나 다투기만 했다 내 몸이 아파봐야 아픔이 보일까 멸종의 문 앞에 서서야 위험을 느낀들 무엇하랴 슬픈 진실 위로 바람이 분다 강이 마르고 산불 솟는 뒤편에서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이 베틀을 지붕 위로 당기고 있다 부르르 몸을 떠는 산맥들 해독 불능의 메시지를 눙친 채 부드러운 손길로 바람이 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백 년은 대추가 열린다. 뻐꾸기는 아프리카에 가서 겨울을 나고 봄에 온다. 일본은 방사능 오염..

카테고리 없음 2023.11.01

한국문화예술교육원 1주년 시낭송콘서트

한국문화예술교육원 창립1주년 행사에 다녀왔다 10월 29일 오후3시, 경남 산청 현지에서 개최된 행사는 김태근 원장의 환영사와 내빈 소개에 이어 김민숙 부원장의 경과보고를 들었다 김도성 산청예총 회장의 축사에 이어 한국시문학문인회 김남권 회장은 김기림의 '길'을 토대로 한 시와 낭송의 정의를 축사의 의미로 강조했다. 격려사는 지리산문학관 김윤숭 관장의 덕담을 듣고 오프닝 시낭송으로 김희순의 꽃자리-구상 시인의 시를 들으며 행사의 문을 열었다. 축하 연주는 전경순의 팬플룻 오카리나 연주를 듣고 강승희 박상범 장양순 안우경 박종정 정서영 우정숙 회원의 시낭송 발표를 들었다 제2부 순서는 용혜원 시인의 문학 특강 '삶의 아름다운 장면 하나'라는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는 용혜원 시인의 신작 시집과 김..

카테고리 없음 2023.10.30

"천 년의 바람"-김남권 시집 출간

열한 번째 시집 '천 년의 바람'이 나왔다. P.S기획시선으로 첫 출간된 이번 시집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황정산 교수님께서 "내 그늘로 오는 그리움"이란 제목으로 해설을 써 주셨다. 천형 같은 그리움의 맥을 짚어 주신 황정산 교수님은 계간 P.S의 편집 주간을 맡아 수고해주시면서 해설까지 써 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다음주에 서점에 입고될 예정인데 이미 온라인 서점에는 시집에 대한 정보가 등록되어 있고 예약 주문도 가능하다. 올 한 해도 부지런히 시를 쓰고, 강의를 하고, 행사를 진행하며 열심히 살았다. 다시 신작 시집을 발간하며, 누군가의 가슴에 한 줄의 시가 위로와 치유의 순간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냄비받침대로 쓰다가 문득 궁금해지면 한번씩 들춰보아도 좋겠다.

카테고리 없음 2023.10.29

사람으로 왔는데 중생으로 갈수는 없잖아-법혜

지극히 평범하고 게으른 산골중의 성장기 "사람으로 왔는데 중생으로 갈 수는 없잖아"는 저자인 법혜 스님의 출가와 구도에 얽힌 이야기가 솔직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산문집이다. 불교의 불佛자도 모르던 까막눈이 어쩌다가 승려가 된 뒤 승려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 이야기하듯 담겨 있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감정이입을 하며 글의 행간을 따라가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필자인 법혜 스님은 이 책에서, 사는 일이 갈수록 팍팍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남의 삶을 살고들 있기 때문이다. "남이 어떻게 볼까! 남이 어떻게 말할까!" 우리는 모두 전전긍긍하고 눈치보며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오롯이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사는 방법이 있다. 붓다의 가르침 안에 내 삶을 사는 길이 있다. 승려는 그..

카테고리 없음 2023.10.25

분홍 감기-민은숙 시집

꽃, 수를 놓다 민은숙 그녀는 소녀지 소녀의 얼굴로 연보라 수수꽃다리 입고 걸어다니지 낮달이 표정을 그려주고 해거름이 그녀의 손 부여잡지 어둠이 하루를 씻기고 저녁이 얼굴 두드리면 그가 그녀에게 꽃, 수를 놓지 다시 분홍 저녁처럼 피어오른 봄의 가지들 거울 속에서 그녀의 붉은 실이 사부작거리고 있지 그가 촘총히 묶은 것은 붉은 실, 그녀 여전히 향기 품은 흰 꽃이라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분홍 감기 생기를 포장한 봄이 다가온다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는 뜯을 수 없는 암호가 걸린 선물 분홍 감기가 기다린다 훌훌 벗어버린 앙큼한 나신이 눈부신 갓 태어난 꽃의 쿠마리 떨림은 천진한 아이 같아서 배반할 줄 모른다 배달 사고 난 꽃밭에서 멈춘 환상이 쓰인 편지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노란 편지지가 쿨럭이면 ..

카테고리 없음 2023.10.23

붉은 밤-김효운 시집

연날리기 김효운 온몸이 날개인 것들이 있다 가는 뼈대를 세워주고 골다공증 예비하듯 밥을 먹인다 먹인 밥 또 먹인다 바람을 타기엔 질긴 것이 좋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씌우는 소망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처럼 짧게, 숨통 틔우듯 가슴 복판을 뻥, 틔우고 아끼는 것일수록 목줄을 매야 한다니 무명실을 얼레에 감고 바람 부는 벌판으로 나간다 내게서 태어난 솔개 한 마리 먼 하늘로 향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울음터 울고 싶은 날이 늘어날수록 숨어들기도 잦아져 문고리 잠그는 방법이 익숙해졌다 혼자인 것들이 선호하는 후미진 축대 밑이거나 강아지 발자국이 굴러다니는 골목길 뒷목 서늘한 언니를 닮은 냉이꽃 한숨처럼 피어 아버지 떠난 앙상한 집을 고이던 계단 위로 몸을 던지는 보랏빛 라일락, 안부를 묻고 돌아서..

카테고리 없음 2023.10.22

수어로 하는 귓속말-정창준 시집

내가 묻은 세계 정창준 세상은 투명하고 긴 유리잔 안에 든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아서 나는 다만, 매끄러운 표면에 묻은 물방울의 표정을 하고 굴절된 내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지 침묵에는 일정량의 습기가 포함되어 있고 고요히 고여서 언 손을 녹이며 증발의 시간을 기다리고 싶었다 세상은 뜻 없이 나를 만들었기에 곁에 묻혀 두고만 있었고 입구 대신 유리 벽만 허락해서 바깥에 있는 내 몸은, 쉽게 글썽거리면서 흘러내렸다 대기는 더없이 뜨겁지만 손끝으로 전해지는 세상은 한없이 차가워서 아무도 부르지 않는 검고 아득한 어둠을 향해 수어로 하는 귓속말을 투명하게 들려주면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수어로 하는 혼잣말 나는 여길 보라고 했는데 당신은 단지 듣겠다고 했다 내 숲에서 새들은 울음을 잃고 바람이 서걱거림을 지..

카테고리 없음 202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