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이든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유래가 있기 마련, 지명에 사람 이름이 붙고 사람의 호에 지명이 붙기도 한다. 미국에 이민 가서 사는 한 중년의 남성은 작은 농장을 일구며 푯말을 "청양농장"이라 적어 세웠다. 고향이 충청도 청양이란다. TV 화면에 비치는 그의 가슴자리가 훤히 읽혔다.
계룡역 플랫폼에 서서 바라보면 북동쪽 저만치로 봉긋하니 어머니 젖가슴 닮은 산봉우리가 반긴다. 시야에 가려 계룡산 정상부는 보이지 않고 우리 집이 있던 곳의 뒷산 정상부가 은은히 눈에 들어온다. 상봉 아래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제각각의 이름을 띤 꽃잎 모양으로 둘러서서 촌락들을 품고 있다.
우리 동네 뒷배는 그냥 뒷산, 앞의 산은 정직하게 그대로 앞산이었다. 하지만 봉우리 명칭은 있었으니 뒷산 봉우리는 우리 쪽에서는 시루봉, 산너머마을 세동 쪽에서는 노적산이요. 노적봉이었다. 앞산은 우리 마을 '안터'에서나 그 앞쪽 '놋적골'에 정상부를 여우바위라고 불렀다.
'곤륜' '화산리' '황새부리'는 내가 주로 바라다보며 자란 마을들이다. 곤륜은 이곳에 첫 둥지를 튼 주민들이 중국의 신성한 산 곤륜산을 따와 붙인 것이고, 화산리는 이북에 꽃이 만발하는 산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6,25로 피난 내려와 이곳에 깃 내리고 고향 그리워서 붙인 이름이란다. 그중 가장 궁금한 지명이 황새부리다. 어감이 부드러워 입에 척척 붙어 한 번 들으면 잊힐 것 같지 않는데, 화산리를 지나는 산세가 황새목처럼 쭉 뻗어 나가 그 끝점의 마을을 그렇게 불렀다.
-"두고 온 그리움은 땅이름을 낳는다" 중에서
김선화 수필가의 13번째 수필집이 나왔다. 시와 수필, 청소년 소설 등 장르를 뛰어 넘는 창작 활동을 하는 김선화 작가는 이번 수필집에서 30여 편의 수필과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한 다양한 소감과 20여 편의 리뷰를 실감나게 수록하고 있다.
이번 수필집을 읽다 보면 밤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기분이 앞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