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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최수진 시집

김남권 2024. 10. 15. 16:48



최수진

저문 강에 배를 띄워라
돛도 닻도 없이 흘러라

갠지스여,
무성한 풀의 발톱을 피하라
특히 연꽃의 이빨을 피하라

다시 말하노니
애써 노를 젓지 말라
짙푸른 바람의 냄새
여름과 가을 그 사잇길에서 머문

그대 이름은 뭄
뱃머리에서 갈라진 두 젖가슴
그대, 나의 화신이로다

유유히 헤엄쳐 가리라
내 가진 것이라곤 아가미와 지느러미뿐
오 그대, 이른 새벽 은하수 어귀에 닿으면
가장 반짝이는 별 하나 바라보길 원하노니

내 즐겁게 마중 나가리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등만 푸르더냐
가슴도 푸르더냐
땡볕을 다오
태우고 태우려 해도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폭우를 다오
덮치고 덮치려 해도
수풀처럼 껴안을 것이다
태풍을 다오
가려고 가려내려 해도
푸르른 우리 가슴 숨길 이유 없질 않겠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화양연화

빛을 등지고 앉아
갈라 터진 시간을 메꿔가며
가지에 매단 손수건으로
미끄러진 순간을 훔치고
단속 딱지 같은 옹이도 말끔히 긁어내
마침내 시 한 송이 틔워낸
뜨겁게 퇴고한 모든 이들의 나날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024년 세 번째로 세상에 던져지는 이번 시집 '뭄'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시인의 시적 세계관이 극대화된 시집으로 판단된다.
무릇 '뭄'이라는 독특한 시집의 제목에서도 짐작되는 바, 몸의 실체를 뒤집고 거꾸로 바라보는 전복된 세계관이 표출되면서 세계 밖, 무한의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시인의 유토피아가 현실적 무질서의 전복과 함께 삶의 결여된 부분을 누설하려는 극화된 심상이 특징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해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