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풍경 소리-전하연 수필집

김남권 2023. 4. 18. 08:37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미인美人이라고 한다. 여기서 용모容貌란 단순히 얼굴만이 아닌, 전신 및 차림새까지를 포함하리라. 그러나 오늘날 미인의 기준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세련된 서구적 얼굴로 한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돈 없고 교양없는 여자는 봐줄 수 있어도 얼굴 미운 여자는 못 봐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말해주듯, 요즘 미인의 기준은 내면의 아름다움은 무시된 채 지나치게 외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는 미인을 보는 기준이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단순히 여성미 그 자체만을 보기보다는 온화하면서도 덕성이 담긴 얼굴을 미인으로 쳤다. 김은호 화백이나 김기창 화백의 미인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미 넘치는 미인들은 청초하면서도 단아한, 그러면서도 기품과 덕성까지 넘쳐 보이는 모습이다.
-본문 35쪽 미인 부분

사찰마다 풍경이 걸려 있는 데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알고 있다. 늘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처럼 수행자들이 수행의 끈을 놓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라 한다. 이처럼 수행자인 스님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물건을 선뜻 내려 나에게 준 뜻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풍경을 달기 이전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던 화두와도 같은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서양의 선 센터에서는 이 파이프 풍경을 마음에 일렁이는 번뇌를 다스리는 도구나 명상음악으로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스님도 세속의 내가 이 풍경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의 고요를 찾기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 스스로가 이처럼 맑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주었을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 풍경을 내 마음의 풍경으로 삼아야겠다. 어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앞뒤로 문을 활짝 열어놓으려 한다. 바람길이 열릴 때마다 울리는 맑은 풍경 소리를 종일 명상음악 삼아 들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맑은 소리 길어 올리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풍경이 있던 자리, 본래 주인이 했던 것처럼 ᆢ
-본문 100~101쪽 풍경소리 부분

웅이는 그해 여름방학 때 나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선생님께"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큼직큼직한 글씨 ᆢ ᆢ 녀석 봐라? 왈칵 눈물이 솟았었다. "1학기 때는 말썽꾸러기였지만 2학기 때는 허물 벗은 애벌레처럼 다시 시작할게요ᆢ" 이런 멋진 말까지 한 아이의 편지를 오랫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때 이후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웅이 모습이 눈에 보였다. 웅이의 공부는 나날이 무르익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 이상 걱정이 필요 없어졌고, 웅이의 따뜻함, 호기심, 모험심, 상상력이 담긴 시들이 날개를 달았다. 급기야 전국어린이창작동시대회에서 큰 상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ᆢ중략ᆢ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지금 열두 살의 웅이는 거침없이 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푸른 애벌레이다. 고치 속의 번데기처럼 더 단단하고 더 성숙해진 다음 나비가 되어 훨훨 제 꿈을 펼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웅이가 비보이나 래퍼가 되면 내가 팬 카페를 만들어 주기로 웅이와 반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웅이가 첫 무대에 서는 날 누구보다 먼저 꽃다발로 축하를 해주고 싶다.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본문 156~157쪽 애벌레의 꿈 부분

하연의 글은 대체로 준수한 선비가 도포자락 휘날리며 마당을 거니는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다보니 따라 걷는 사이 함께 여유롭고 미소 짓게 된다. 성품이 반듯하여 새겨 걸고 싶은 한 말言을 이끌어내고 미인을 통해 귄 있는 사람을 재해석 한다.
수필은 이렇게 나에서 밖으로 향할 때 주변을 뛰어넘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하연은 그 점억 탁월하여 사고가 어느 한 쪽으로 갇히지 않고 열려 있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더욱 건실하고 타의 모범이 된다.
자기에게 거는 최면 같은 자세가 애끓던 젊은 날을 지나 무르익어 아름답다. 담담한 문체 속에 그녀의 사랑도 눈물도 승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시시로 일어나는 번민조차 가라앉힐 수 있는 경지, 이것이 수필이다. 이 맛을 만나기 위해 수필가는 자꾸 수필을 쓰는 것이다.
-김선화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