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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걷는 슬픔을 지날 때-신진 시집

김남권 2024. 11. 9. 09:14

시소

신  진

두세 살배기 애 둘이
시소 놀이를 하고 있다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하나가 올라가고
다른 하나가 내려가면 하나가 올라가고

하나와 다른 하나가 수평에서 만나는 순간
반가움에 까르륵 함께 전율한다
가장 황홀한 자세는 하나와 다른 하나가
평형으로 만나는 데 있나 보다

상대를 올리고
나를 내릴 때
평형에서 만난다는 이치
아가들끼리 아는 시소의 엑스터시

나도 같이 해볼까?
어른이 끼어들자 안 돼요!
이구동성 손사래 치며 울상을 한다

아가들이 아는 모양이다
일단 몸을 불린 인간은 사람 반가운 줄 모르고
평행장애로 하여
수평잡기를 못한다는 사실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자아실현

내 집 지키고자
남의 집을 턴다
남의 집 터는 동안
내 집 털린다

남의 집 터는 궁리를 지혜라 하고
내 집 털리는 짓을 양심이라 하고
털고 털리는 품앗이를
경제라 한다

경제와 지혜와 양심의 바퀴 굴리기
그 짓을
요새는 자아실현이라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허공

평생 내 손가락 먼 곳을 가리켰으나
그곳에 이른 때 없고

평생 내 손가락 꼭대기를 가리켰으나
그곳에 오른 적 없고

평생 내 손가락 나를 가리켰으나
그에도 닿은 적 없다

죽어서는지구의 중심을 가리키리라
이번에는 그 중심
허공에 가 닿으리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의 시를 경험시로 자리매김하는 일도 가능하겠다. 시는 가장 구체적인 삶의 과정이며 그 경험의 표현이라는 입장이다.
'혁명 본색'은 난폭한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며 마침내 비관할 수 없는 희망을 감추지 않으려 한 역작이다.
시인은 경험의 사건을 삶의 양식으로 표현하는 시학을 지속한다. 공존과 평등의 생명가치를 환기한다. 그의 수평의식은 못 걷는 슬픔을 지날 때에서도 매우 적절하고 간절하다. -구모룡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