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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달-김남권 시집

김남권 2024. 10. 26. 10:31

세상의 거짓과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그 너머의 희망



계간 문예지 P.S(시와 징후)의 기획시선 제6권이다. 계간 시와징후 발행인이자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란 시로 널리 알려진 김남권 시인의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는 80여 편의 신작 시를 선보였다.

시인은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시인은 사회의 거짓과 부조리를 죽비처럼 매섭게 후려친다. 하지만 시인은 깊은 사유와 통찰로 길어 올린 시어를 조합하여 어둠 속 빛줄기이자 마음의 본바탕과도 같은 고운 감성의 시편들을 선보인다.

한 편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의 그런 마음이 녹아들어 독자의 가슴으로 전달되고, 시와 함께 독자는 지친 오늘을 위로받고 그 너머 희망의 세계를 품게 된다
-출판사 서평


열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는 다섯 번째 개정판 출간을 앞두고 있지만, 개정판 출간을 제외 하더라도 12권의 시집을 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P.S기획시선으로 출간한 이번 시집엔 인간 본연의 서정성은 더 깊이있게 풀어내고, 현실을 살아가는 내면의 갈등과 사회적 문제들은 냉철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우리 문단에도 시집이 읽히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오후 네 시의 달>을 세상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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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달

김남권

울지 마
그만 울어도 돼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네 곁에 있어 줄게
짜장면을 시켜 먹다가도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도
오후 네 시가 되면 네 곁에 있어 줄게

하루해가 지기 전,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노을을 함께 바라봐 줄게
줄 수 있는 게 노을밖에 없을 때
노을처럼 너를 품에 안고 고백할게
마지막 사랑은 너일 것이라고
최후의 그리움을 빌어 하늘에 맹세할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영혼을
너를 만나 완성할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평생을 기다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들판에서
한 번도 너를 잊은 적 없는데
빗물을 핑계 삼아 울지 않아도 돼

울지마
이제 그만 울어도 돼
오후 네 시가 되면
죽을 때까지 네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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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장마

김남권

그대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은 저물고 길은 어두워지는데
마중 나간 사람도 돌아오지 않는데
별이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까?
새벽이 오기 전에 달은 볼 수 있을까?
개울물 소리는 창문 열고 들어 오는데
바람의 숨소리는 시간의 음표를 건너 오는데
흰 눈으로 오는 그대는
푸른 가슴에 꽃무릇 한 송이 남겨 놓고
겨울 나무 가지 위
겨우살이로 겨우 살아 남아
내게 올 수 있을까
그대가 멀리서 오고 있다는 말을
바람이 전해주었다
억수같은 장대비가 나뭇가지를 적시고
몇날 며칠, 밤새워 울었다
텅 빈 가지 끝으로 순한 아가미가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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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등처럼-김남권

그대를 만나려고 꽃등처럼 왔다
그대의 눈빛을 만나려고 꽃의 뒤에서
사슴처럼 기다렸다
오늘이 가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바람 부는 방향을 따라가며
그대의 숨결을 저장했다
별빛의 방향을 따라가며
그대의 무늬를 생각했다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한 채
그대의 뜨거운 가슴을 만나려고
다시 올 새벽을 기다리며 나는
꽃등처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