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에 달걀
권혁연
겨울 베란다에서 방금 꺼낸 달걀
떨면서 한 손을 웅크렸다
힘을 더하거나 다 놓지 못하고
둥글게 한 알을 보존시키는 이상한 감정에
내가 낳은 것인가
엉거주춤 서서 부화를 고민했다
놓아먹인 거며 성분을 꼼꼼히 따져 먹던 시절에는
부화하지 않을 뿐 그날의 선택을 믿었고
황백만 있어 신처럼 강했다
하루 한 개씩 무한 달걀을 깨 먹고
부활을 믿지 않는 신자처럼 아슬아슬 살면서
내일은 두 개의 동그라미가 완성될 것을
모레는 네 개의 동그라미가 완성될 것을 기원하였다
기원을 찾아 가면서 만들어진 동그라미들
난좌에 앉아 난황이 썩어 가고 냄새를 견디는 일상들
기도가 될 때까지 경계선 주변을 서성거렸다
날달걀은 나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나의 기원은 지금부터다 속으로 웃었다
부화를 기다리거나
삶을까 구울까 고민하는 생활 나는 지금이 좋다
동그라미 안이든 밖에서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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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면 다 꽃이다
눈이 없는 마을에 눈이 내려 기분이 앞장을 서서 간다
선물 꾸러미처럼 군데군데 쌓아 놓은 눈 더미들
지나간 발자국 지나온 발자국들
왼발을 갖다 대 보다 오른발을 대 보다
커서 심심해졌다 작은 건 미안했고 비슷한 건 곤란하다
쌓인 무늬들 맨 위 발자국 금세 밟히겠지
거꾸로 대 보고 그림을 그려 보다가
답 없는 직소퍼즐은 이쯤에서
유리 지바고가 되어 눈 덮인 운동장을 돌았다
가장자리를 발끝으로 파면서
흰 복판에 뛰어들지는 못하고
강아지랑 아이를 데려왔어야 했나
빠르게 뒤로 걷는다면 돌아올지도 몰라
주위를 살피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앉은 김에 누웠다 누운 김에 굴렀다
나를 기원으로 계속 구르면 얼마큼 커질까
발가락 빠는 아기자세로 나는 구른다
비둘기자세로 겨울을 날려 보낼까
개구리자세로 봄맞이할까
운동장 한복판에서 멈춘 시곗바늘
감았던 눈을 떠 보니 회청색 하늘이다
새벽인가 여기서 하룻밤을 샜나
놀라 등뼈에 달라붙는 발소리를 털고 굴러온 무늬를 본다
이만하면 꽃이다 꽃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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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산
온몸을 굴려 경사면을 올라가는 눈사람인가
칼잡이인가
눈길을 양탄자처럼 말면서
차례로 나무들의 뼈를 바르며 오르고 있다
어제는 흙덩이처럼 멎어 있어
바람에 밀려 굴러떨어지는 줄 알았다
덜덜덜 굴러서 단숨에 내려올 거면서 꼭대기를 꼭 찍는다
박수를 쳐 줄까
소리에 부서지는 눈사탕은 아니었으면
뒷짐을 하고 고개 숙여 눈을 뒤집어쓴 바쇼*같고
샴발라**에서 온 노인 같고 붉은 잇몸에 막대 사탕을 문 아이같다
하루만 반짝이다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설산을
아파트 높이 동산을 천해고도를 넘듯이
겨울 아침을 온통 굴려 올리고 있다
*하이쿠 시인
**티베트 불교에서 믿는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