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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미안한 일-한명희 시집

김남권 2024. 9. 10. 09:42

간이역으로 간 구절초

한명희

무서리 내리기 전
가을이 아홉 마디로 자랄 무렵

하늘로부터 가장 낮은 자리
가지런히 침목枕木을 이어 달리는 기차는
산모퉁이로 긴 꼬리를 감추고 사라졌다

더 멀어지지 않는 평행선 철로를 따라
둥지를 찾아 귀소하는 새들은
바람보다 앞서 날아갔다

최선을 다해 가까워지는 오래된 목적지를 향해
그리움의 레일위를 달리다 보면
풍경은 기억의 원형을 바꾸어 재생되었다

자라지 않는 유년의 간이역에서
물끄러미 하행선을 바라보며 참았던 눈물이
구전초의 구름머리 사이로 흐드러졌다

어머니의 굽은 등에 업힌 낮달이
갈참나무 가지 사이를 빠져나가는 사이
추억은 기차를 타고 내 마음 깊숙이 경적을 울렸다

어둑해지는 간이역 시간 밖에서
날 저무는 줄 모르고 걷다 마주친 아홉 마디 그 꽃은
어머니의 말간 눈빛으로 아롱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솟대가 된 새

생이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좋겠지

까치 두 마리
창문에 머리를 박고 주검이 된 날은
허공이 그냥 허공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솟대 두 개
대추나무 옆에 우연처럼 세워져

그때 죽은 까치의 환생일까
두 마리 나무새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다른 꿈이 깊어
접었던 날개로 다시 날아왔다 믿으니
목각새의 가슴에도 피가 도는 것 같았다

감자밭에 날아온 배추흰나비 한 마리
외할머니의 환생이라 믿고 싶었듯

저기, 솟대 위로 솟아난 두 마리
죽은 까치의 영혼이라 믿으면

내가 바란 생의 한 장면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 다시
현현할 것 같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물 위를 달리는 나비

바람을 거스르는 행위는
등뼈를 곧추세우는 일

작달비가 훑고 간 물의 광장에
하나둘 모인 윈드서핑족
물비린내 맡고 찾아든 수중나비 떼 같다

하얀 포물선 그리며
위태로운 바람처럼
물의 높이를 즐기는 청춘들

파도의 꼭짓점을 향해 날개를 퍼덕이는데
가장 낮게 난다는 것은 힘을 빼는 일인 듯

곤두박질치다가 다시 솟구치기를 여러 차례
온몸으로 부력을 버티며 물살과 한 몸이 된다

수면을 탁본하면 불러 세울 수 없는 바람이 불고
겹치고 겹친 물주름이 펴지면서 서핑은 시작된다

물 위에서 날거나 달리는 순간만이 안전하다

소용돌이 현실을 뚫고 나비들은 비상할까

중심을 잃고 휘청대도
다시 균형을 잡는 날갯짓만으로
그대는 이미 순풍에 올라탄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명희 시인의 시에서 장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시에 나타난 장소를 잘 따라가 살펴보면 시인의 시가 지향하는 바가 잘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명희 시인의 시에 나타난 장소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의적 공간이며 시인만의 성소이며 기도처이다. 여기서 시인은 제사장처럼 혹은 사제처럼 시라는 언어형식을 통해 제의를 행하고 기도하며 자신의 깊숙한 내면과 만난다. 물론 이 공간이 현실 속의 구체적 어느 장소를 가리킬 수도 있으나 그의 시적 사유가 빚어낸 문학적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다.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여 성찰하고 현실에서 받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여 다시 삶을 꿈꾸며 건강한 삶으로 복귀한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현실도피와는 다른 재생과 부활의 공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시인에게 시는 재생과 부활을 꿈꾸는 기도문이거나 주문이다. 현대인들은 많든 적든 심리적 압박감과 소외감 단절감 등 수많은 심리적 병리현상 등을 경험하고 때로 정신적 외상을 안고 산다. 따라서 시인이 빚어낸 공간에 동참하여 그의 기도와 같은 정결한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재생과 부활의 꿈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복효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