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조영행
조인다,
흐릿한 눈빛과 헐거워진 하루부터 조여본다
끓는 압력밥솥 추처럼 흔들리는 생각을
제자리에 끼워 넣는다
내가 나를 조여 보는 것이다
풀어진 신발 끈을 내일로 향하게 조절하는 것처럼
조여지지 않으면 탈선되는 행보
맥이 풀린 오전을 추슬러 오후로 밀어 보낸다
막막함도 지난 시절의 힘을 빌어 미래의 나사로
돌리다 보면 치자꽃 향이 날지도 몰라
무기력으로 풀린 것들
불안과 방치된 시간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시든 화분의 꽃처럼 표정을 잃어갈 때
나는 나를 튼튼한 하루에 고정해 보는 것이다
헐거워진 것들은 꼭 조여야 한다
비로소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집안의 수도꼭지도 벽시계도 나의 사람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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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화 한 분
요양병원 보듬의 집 앞 황매화가
비에 젖고 있었네
꽃송이마다 그렁그렁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
누가 여길 찾아 꼭 넘어올 것 같은 길인가
저 물안개 첩첩인 고개는
짙어가다 노랗게 질 것 같은 누구의 기다림은 아닌지
이만치 와서 돌아보면
보일 듯 보일 듯 와서 돌아보면
내 어머니 같은 황매화 한 분이
비를 맞고 서 계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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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묶으며
배추가 가을 햇살을 안는다
한 겹 한 겹 볕을 들일 때마다 노랗게 차오르는 속
몇 고랑 배추가
한 생들이 건너가는 푸른 잎의 계절
밖에서 안으로 안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단단해진다
이제는 묶어주지 않아도 된다는데 나는
깨끗이 짚을 다듬어 하나씩 띠를 둘러주는데
잘 앉혀 놓은 질항아리처럼 단정해지는 배추들
아직 몇 번 더 비바람을 견뎌야 속이 깊어질 것이다
겹겹이 맑은 속잎
뽀얗게 차오를 중심을 생각하니
밭고랑 종대로 늘어선 하나하나 대견하다
지금은 꼭꼭 속을 채워갈 때
바람과 햇살이 배추 포기마다 푸드덕거린다
내 걸어온 종아리를 툭툭 치는 배춧잎
나는 한 계절을 건너온 노고를 쓰다듬어 본다
떼어낼 것도 버려질 것도 없는
그래서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할
가을배추가 노랗게 햇살을 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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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행 시인 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치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서로 손잡는 놀라운 의미들의 연결 고리다. 고등어와 시는 어떤 의미의 연결고리도 없다. 그러나 시인은 고등어와 언어를 시의 언어로 환치시킨다. 마찬가지로 생선 토막은 은유화되어 붉은 벽돌로, 이는 다시 현실의 붉은 벽돌집이 되어 의미의 연결고리를 생성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현상은 시집 전반에서 산견된다. 닻근리에서의 늙은 호두나무는 그리운 아버지를 표상하고 비유하며 쓸쓸하게 서 있다. 그러나 아버지뿐이 아니다. 이 나무는 한 가계의 피고 짐도, 계절이 드나든 적막도, 이제 속울음조차 내놓을 수 없는 닻근리의 사연까지 함께 담고 서 있다. 그리하여 독창적 은유의 세계에서 창출된 모든 시편들은 서로 손잡고 빛을 발할 것이다.
-호병탁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