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조숙자
오줌보에 탈이 났다
깊은 밤,
119구급차에 실려와 응급실에 누웠다
가족이 없느냐는 물음에
눈물 몇 방울 떨군다
고난의 새 한 마리 부리로 벽을 쪼아대고
가시에 찔린 상처에서 붉은 꽃물이 뚝뚝
몸에 투명수로를 만들고
붉은 수액은 바다처럼 출렁인다
서늘한 공간을 베고 누워
저마다 급박한 사연이 요동치는 이곳
노인의 침상에 차가운 홑이불 덮인다
무거운 고요를 흔든 후
옆에서 내가 대신 울어준다
너도 나도
강보에 다시 싸이듯 흰 홑이불에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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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고 싶다
봄이다
모두가 꽃이다
호박꽃이면 어떻고
지는 꽃이면 어때
꽃이면 꽃이지
그녀는 오래 꽃이고 싶다
연두색 고운 봄날
살며시
동백꽃처럼 떨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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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늙은 길이 걸어온다
바람맞은 반쪽은 직립을 잃었다
지팡이는 그와 함께 자작자작 횡단보도를 걷는다
헐거운 옷에 감춰진 길은 험하다
넛트 풀린 아랫도리에선 원초적인 향기가 난다
씩씩거리며 달리는 거리의 무법자들 사이로
그녀는 한편이 되어 완주를 환호한다
비틀거리는 손을 잡아 인도에 올린다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포옹한다
손아귀엔 사내 값이 있다
그 길에서 난 내 어머니를 보았다
나를 보았다
이십 년 쯤 지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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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물
지난밤
내 손톱에 붉은 달 떴다
첫 눈 올 때쯤 달이 지겠지
봉숭아 물 들이던 어머니 손길
달의 뒤편에서 웃고 있다
초승달 뜨면
하늘에 띄워야지
톡,
어머니 무명치마에 떨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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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꿈
복숭아씨 두알 심었다
기척 없다
그 사내
선산, 태양이 머무는 정수리에 심었다
싹이 나질 않네
봄은 저벅저벅
걸어오는데
꽁꽁 묶인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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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이 있어 내 삶은 늘 풍요롭고 푸르르다
오십아홉 1998년 하늘에 닿은 내 사랑, 그리움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평행선을 내어 달리는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시를 쓰던 남편 엄성기 여호수아 어깨 너머로 본 책들을 근간으로 써내려간 습관이 긴 이별 후 어쭙잖게 책으로 묶게 되니 30여년이 감회롭다
-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