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텃밭
정든역
열 걸음 남짓한
세 줄짜리 텃밭은 나의 보물이다
4월이 오기도 전에
무엇을 심을지 생각하다가
가슴이 벅차 오른다
오이 토마토 호박 상추를 심고
새싹이 돋아나오는 걸
애타게 바라보는 마음은
정말로 흐믓하다
가족들에게 건강한 채소를
먹이기 위해
어린아이 같은 발걸음으로
아침마다 텃밭으로 향하는 마음은
고요하고 신비롭다
하늘이 내려주는 자연의 선물을
받을 생각에 온몸이 떨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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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탱이
김장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이리저리 분주하다
강아지도 덩달아 뛰어다니고
뒤꼍의 닭들도 푸드덕거린다
멧닭, 청닭, 암탉, 열댓 마리가
한꺼번에 횃대 위로 날아올랐다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맛있는 배춧잎 주어도 그때뿐이다
김장 소를 넣던 언니가 소리쳤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놈들부터
잡아 먹는다"
말귀를 알아들었을까
철없는 시절 탱이들 일순 조용해졌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아무래도
사람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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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날
따뜻한 봄날 천지 만물이 눈을 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방에서 꽃잎이 피어나고
새싹이 돋아나느라 분주하다
질경이, 소리쟁이, 망초대, 가시상추
눈개승마, 쑥부쟁이
수줍게 돋아나 입맛을 당긴다
냉이꽃이 필 때쯤이면
농부의 호미질도 바빠지고
배꽃이 필 때쯤이면
모내기로 분주해진다
옆집 새댁 치맛바람 휘날릴 때쯤이면
민들레, 애기똥풀꽃 만발하고
어린 시절 추억이 돋아나와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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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역 시인은 해마다 봄이 오면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뜯어 말리고 반찬을 해먹고 쑥개떡을 만들어 동인들을 주고 이웃들을 초대해 나누어 먹으며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여인이다. 봄이 오는 순간을 가장 신나게 기다리며 즐길 줄 아는 시인이다. 그리하여 정든역 시인은 강원도 산골의 작은 마을 봄역의 역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들러야 하는 그런 정든역의 역장이 아닐까.
-김남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