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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놀이터-양순진 생태동시집

김남권 2023. 3. 2. 07:55

참외꽃

양순진

어디서 날아온
씨앗일까

동네 주차장
구석진 자리에
홀로 피어난
노란 별

잎은 호박잎 만큼
커다란데

꽃은 앙증맞은
아기별

오고가는 사람들
발길질에도
얼굴 붉히지 않고
방긋방긋 웃는다

가만히
만져주면
동글동글
노란 달 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닭은 개보다 세다


웰시코기 똘똘이
매일 닭에게 진다

매일 아침 닭들이
우루루 몰려와선
똘똘이 집 점령한다

집도 빼앗기고
밥도 빼앗기고

닭들이
넓디 넓은 자기네 집 두고
좁디 좁은 개집에
둥지 튼 이유

알 낳으려고
알 낳으려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자꽃


엄마 따라 감자밭 갈 때
내 딸 내 딸
불러주던 노래

하얀 꽃 피웠지

엄마 따라 감자밭 갈 때
날아라 날아라
날개 달아주던 마음

노란 꿈 피웠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반딧불이 별


반딧불이 하나는 외로워
불 켜면 어디선가
한 마리 날아오지

한 마리
두 마리
모여들면
곶자왈은 놀이터

숨어있던 반딧불이
너도나도 숲 밝히면
곶자왈은
밤하늘보다 더 반짝거리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말미오름


서귀포의 시작
제주올레의 첫 마을
시흥리에 있는
오름 하나

말의 머리처럼
생긴 말미오름
두산봉이라고도
한다는데

꼭대기에 오르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까지
훤히 보여요

그래서
시흥사람들
마음 마음이
탁 트인 들판처럼
넓고 넓은가 봐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때 나는 자연 속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제주의 오름, 올렛길, 숲길, 곶자왈, 바다, 연못, 습지는 나를 키우는 자연학교였다. 코로나 전파로 학교 수업이 중지되고, 코로나 감염자, 확진자로 세상과 단절했을 때도, 그 이후 우울감으로 빛을 잃었을 때도, 풀 한 포기 나비 한 마리, 새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풀죽은 나를 생기 있게 토닥였다. 코로나 블루 기간 내내 자연에 의지했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자연의 색에 나를 맡기며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사진 찍고 글로 기록했다. 식물의 이름과 생태를 하나하나 조사하고,  곤충이나 동물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대화를 나누었고, 식사와 그늘과 새 생명을 나눠주며 기꺼이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양순진의 생태 산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