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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바다를 자꾸 구두라고 불렀다-홍성남 시집

김남권 2024. 6. 14. 16:34

포자의 시간

홍성남

밤을 건너기 위해 이야기는 매일 죽는다

처음 이야기는 한시적이어서
옆구리가 닳아버린 단편은 손금 속으로 흘려보낸다
어둠 속에서도 길어지는 그림자는
서로를 속이는 즐거움
사이는 그렇게 태어난다

어떤 이야기는 푸른곰팡이가 되어 번진다
알지 못하는 포자는 슬픔도 없이 가식도 없이
보이지 않는 줄거리로 숨는다
내일은 내일의 이야기만 있을 뿐

어제 한 인사 오늘은 그만하자

어둠 속에서 더 검게 젖어 있는 것은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밤의 가장자리에 도착해 보면
죽은 채 오래 살아있는
어느 몽상가의 저녁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이유가 있다는 말을 믿기로 한다
깨진 유리 조각으로
혈서를 쓰는 줄도 모르고
버려진 너의 표정 같아서

창문 너머에서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 미래에 대해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자꾸 떠돈다
처음 들어보는 이국의 말들이 지나가고
입을 벌리면 해독되지 않는 새들이 한꺼번에 입속에서 날아오른다는
그런 이야기
내가 없이 천국이 시작되는 그런 이야기
모든 슬픈 이야기는
나의 손금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거라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의 왼쪽으로 당신의 오른쪽이 자란다

고슴도치는 왼쪽으로 걷는다
그게 습관이다
왼쪽은 반쯤 환하고 반쯤 어두워
누군가 나를 지나쳐 간다

같은 문을 열고 나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집 안을 뱅뱅 돈다

멈추지 않아서 다행이다

들키기 위한 장소를 만들 거야
어디로든 높이 올라가서
끊어진 지문처럼
이어지는 지문처럼
슬픔의 모양을 상상하지

도망칠수록 가까워지는 애초의 장소
계단을 내려오고 내려올 때마다
나는 없어지고 발자국만 남는다

누군가 나를 움직이는 것 같아

한쪽으로만 쉴 새 없이 돌다 보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리고
그건 내가 또 다른 집이 되고 싶었다는 말
혹은 벌써 울었다는 말

제자리
이건 매일 드는 마음
날마다 어딘가로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왼쪽의 슬픔은 잠시 밀어둔 약속

다시 왼쪽으로 걷는다
오른쪽의 비밀이 조금 벗겨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두부 그리고 편지

무너지려는 태도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두부
썩는 일이란 두서없는 농담까지
혓바닥에 올려 놓는 일
직육면체의 틀을 껴안고 그 안에 고인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저 의지를 뭐라 불러야 하나
맥락 없이 낯선 냄새 속으로 미끄러진다
캄캄한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몽글몽글 뭉쳐지던 풋사랑을 떠올리거나
스스로 면죄한 물컹했던 결말을 짜깁기하거나
훔쳐보던 나를 내가 훔쳐보는 일
종균처럼 다락방에서 푸르게 덫을 치고 있던 시간
창문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켜켜이 다짐을 뒤집어쓰고 있는 편지 옆에서
하나의 방향만을 답습한 채
여물어 가려는 생각을 멈췄다
끝내 응어리지려는 것은 유구무언으로 남고
두부가 가진 단단함이란 과정밖에 없다
단면마다 각을 세우며
경로를 몽땅 지우는 두부
칼금을 안고 떨어져 나오며
아무도 모르게 말랑한 살에 앙금을 품는다
한 김을 쏟아 결의를 다짐할 때
뜨거운 제 몸을 천천히 식힐 때
순한 감정의 틈은 오롯이 메워진다
번듯한 것이 오히려 서글플 때가 있다
편지는 아직도 반듯함을 버리지 못해 진행형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홍성남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숱한 부재의 확인은 실제 없음이 아니라 없음의 인식을 통해 나의 있음을 발견하고 확인하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부재의 드러냄은 그것으로써 자아의 확장에 기여하고자 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 속에서 만나는 대상을 통해 스스로가 이 세계 속의 한 일원임을 확인하려 하기 보다는 세계화의 어긋나는 지점을 통해 부재한 자신을 더욱 드러내는 방식으로 존재하려 한다는 것, 그가 상실한 세계와의 고통스러운 대면을 피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일상화되는 질서 속에서 평안해지기를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세계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듦으로써 독립된 주체로서 자신의 세계를 꿈꾸는 일, 어쩌면 그것이 시인이 가고자 하는 세계일 것이다.
-이승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