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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점 볼링볼링-김익경 시집

김남권 2024. 5. 11. 07:59

세 시와 네 시

김익경

  세 시는 세 시대로 네 시는 네 시대로 빛나는 얼굴 세 시가 네 시를 향해 달리는 속도는 뺨을 갈기는 질량에 비례한다 세 시는 고양이의 눈에서 태어났다 조상의 가장 빛나는 얼을 담고 있다 세 시의 세상은 불면을 이긴다 세 시가 없었다면 검디검은 지문도 없었다 지문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흔적 없는 네 시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출발을 준비하는 새벽 버스의 너트가 조여지고 있다 세 시와 네 시는 기억되지 않는다 다리 위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 모르는 약속을 하고 서로를 믿지 않기로 했다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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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점 볼링볼링

된장, 에 대한 모독, 왜 만날 멀건 된장국이야
차마 젠장이라고 발음할 수 없는

소말리아에는 모독이나 모욕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나는 나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의무만 갖겠습니다 다시

당신이 나를 압니까

당신의 거울에게 안부를 여쭙니다 보잘것없는 언사로 가족을 배신한 점 개에게 혀를 내밀거나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린 점 모든 점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점점점

나는 멀리 있습니다 마지막 열대 펭귄 무리 속으로 갈것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어 성냥을 팔고 있을 것입니다

작아질 것입니다 구름이 커지는 만큼 목줄을 당길 것입니다 규칙은 정하지 않겠습니다 볼링핀은 볼링볼링해질 것입니다

장롱에서 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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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단도직입적입니다


오늘은 가짜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 버렸다

파뿌리가 검은 머리가 되는 것은 매직

애인은 늘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다고

파뿌리 같은 짐승이라면 모르겠다

내일도 가짜

진짜보다 가짜가 이뻐 보이는 것은
더 정교해지는 애인들 때문

이웃을 탐한 적 없듯
진짜를 가져 본 적 없다

진심이 될 법한
마법의 방식

결단코 애인을 찬미하지 않는다

혀를 잃은 자

나는 당신에게 즐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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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법은 얼핏 단정해 보이나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그것은 설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정의 낭비가 없기 때문이다. 김익경의 시는 모르는 독자와 만나 모르는 약속을 하고 그 모름의 힘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어떻게 모름이 에너지의 작동으로 연결될까. 그 역량은 모르는 여자의 부고가 도착한 날, 아는 여자가 부고를 쓰고 있다거나 모르는 여자가 쓴 부고를 아는 여자가 고친 것처럼 누적된 황량함과 누가 누굴 쳐다 보는지 알 수 없는 그 모호한 무력감으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무력은 오히려 억제된 무의식의 분출로서 자리할 뿐 아니라 코라 세미오틱에 도달하는 욕구를 언어의 질서에 끼얹는 방법이다.
즉 김익경의 시는 수신자가 불분명하고 감각의 분배 체계를 교란함으로써 정체성이 밝혀지지 않은 채 위반의 부정성을 통과하고 있다.
-권주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