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을 파라볼라 안테나처럼 서서 아득한 우주의 소리를 들으려 했으나 도달하고자 했던 한 점은 언제나 구체적 삶의 터전이다. 빨간 지붕 위에 원형 파라볼라 안테나가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서 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있다. 애끓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처럼 보인다. 기다림에 지쳐 가슴에 난 구멍처럼 둥글다. 녹슬어 앙상해질 때까지 하늘 끝 방향을 바라보는 일에는 결코 흐트러짐이 없다.
내 삶의 지향점은 고향이다. 나의 파라볼라 안테나는 남녘 고향 마을을 바라보고 서 있다. 받아보고자 하는 전파를 받기 위해서는 그 방향으로 맞추어야 한다. 김장 하던 날, 내가 태어난 '도덕리 312번지'는 파라볼라 안테나의 한가운데 같은 장소다.
그곳에서 박애기의 생명을 섬세하게 수신한다. 그렇게 수신한 우주의 언어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을 어귀에 서 있던 팽나무에 새겨진 다음, 세상으로 송신된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나의 송신 출력은 자꾸만 커진다.
본시 처음과 끝은 없다. 글을 쓰는 동안 어쩌면 내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세상과 교신을 시도한다. 거기서 보내온 수많은 전파를 파라볼라에 담아 하나의 점으로 모은다. 응집된 이야기 안에 박애기가 걸어가고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북치는 법을 전수 받았더라면 아버지의 슬픔을 가늠해 볼 수 있었을까? 북을 가르쳐 주지 않은 큰 뜻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울분이 내게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북채를 잡고 자신의 가슴팍을 수도 없이 두드렸을 아버지도 이제내 곁에 안 계신다. 높고 낮으며 길고 짧은 것을 잘 다루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에둘러 가르쳐 준 아버지도, 과수원집도, 세동의 종수 씨, 가삼동의 치주 씨, 아랫목골 욱규 씨도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종이박스의 장단에 취해 친구와 자리를 바꿔 앉아 뷱채를 쥐고 두드린다.
덩, 궁, 딱 따드락, 딱, 구궁, 딱!"
-본문 41쪽 두꺼운 북소리 중에서
박남주 작가는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케이티에 평생을 근무하다 퇴직하여 도시농업전문가로 농학석사를 받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다.
2019년 월간 신문예 신인문학상, 2023년 계간 ㅓㄴ수필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제8회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최우수상, 제8회 철도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배꽃 따는 수탉, 존재의 이유 등이 있다.
비원문학회, 선수필 작가회 회원, 영등포50플러스센터 작가도전반 회원으로 지속적인 창작에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