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햇살을 쥐고
한승태
죽은 자의 결계를 뚫어야만 보이는 당신
중환자실 병상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발
햇살의 세계로 어떻게 돌려놓을 것인가
만나면 무릎이 자주 꺾이고 헛발질을 해서
강 건너 숲을 지나는 솔바람 소리 따라
어차피 가야 하는 곳 먼저 가는 거라 했는데
서로 뭔가 들킨 듯하여 눈을 맞췄는데
그때 당신을 모른 척 지났어야 했어! 그냥
매일 스치기는 하지만 마음이 남지 않게
잊지 못하는 것은 오래 앓아 온 햇살 같고
가야 할 길은 절반이나 남았는데 스러진 바람
저쪽에서 건너와 당신 바닥까지 내려가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울음이 찾아왔다
새벽꿈에 돌아가신 엄마가 출연했다
하지 못한 말이 주먹밥처럼 명치에 묵직한데도 구내식당 배식구 앞에 서 있었다 주방 아주머니들은 소리 없이 왁자지껄하고 음식은 늦어지는데 식당의 어느 방으로 엄마가 들어가셨다 거기엔 외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닌 날 보고 엄마는 엄마를 마주 보며 앉아 계셨다 어디 갔다 왔냐는 나의 짜증에 돌아본 엄마 얼굴은 처음엔 환했는데 점차 어두워지다 사라졌다
. 먼 데를 떠돌던 엄마가 그렇게 찾아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손톱자국
어린 덩굴손이 꿈에서 자라 올라
꽃 핀 벚나무 하나를 덮치고 있다
덩굴손은 나의 손발을 감고
심장에 나사를 박는 중이다
(뭐든 맘대로 하잖아, 너는)
사랑한다 채찍질하는 감옥이다
(그만큼 안았으면 벽도 무너졌겠다)
서로 어둠의 뺨을 치는 날개큰 새
도꼬마리와 억새가 뒤엉키고
가시박이 머리끄뎅이를 붙잡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꿈틀거리는 어둠
왜 나는 대낮 꽉 찬 햇살아래서만
비둘기 울음 같은 내 속의 징징거림을
비현실적인 맑음으로 소비하나? 왜
버려진 의자같이 한쪽으로 기우나?
건너편 옥상에도 나 같은 의자들 삭아서
오그라드는 물때는 들고 일어났다 한때
거기 빗물의 화면에 갇힌 내가 깜빡였다
무엇이든 열심인 모니터의 커서처럼
밤 오지 않는 사무실엔 앉아 있지 못하고
하루에 몇 번씩 옥상을 오르내리는 만년
끌어안을 고통도 없이 담배 연기에 흩어지고
출구 없는 사옥은 햇살에 포위되어
시침 분침이 돌고 있는 고층의 그림자
꽉 차서 오히려 텅 빈 사무를 채우고
이렇게 비현실적인 하루를 소비해도 되나?
건너편 옥상에도 나와 같은 의자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최선을 다해 실패할 것이다
화이트보드로 삼 년 동안 사무실 창문을 가렸다 숨은 햇살 한 줄기가 아쉬워 판을 치웠더니 방충망에 밀잠자리 한 마리가 날개 펴고 하늘 보는 자세로 적멸에 드셨다 그는 죽어서도 하늘을 잃지 않았다
찍지 않는다는 건 또 얼마나 시퍼런 짓인가 흰 밤을 넘어 안개의 새벽이 늘어난 오십, 나를 가린 투명 창 앞에서 눈 뜨고도 밖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진데 뜨거운 일과와 부릅뜬 내 여름은 얼마나 캄캄했던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승태의 시는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과거에 천착하지 않고 현재를 있는 힘껏 살아내는 태도를 형상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오늘을, 실패가 예정된 이 인생을 살아새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쉰 넘어 잠 깨면 새벽 세 시/눈을 떠 말어 일어나 말어//내 맘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데/눈을 떠 말어 일어나 말어" (출근길) 고민하던 화자가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리라고, 그리하여 행복하지만은 않은, 아니 어쩌면 우리는 동지라고, 한배를 탔다고 말하며 원치 않는 동료애를 뽐내는 직장 동료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술에 취한 그를 들쳐 업고 집 앞 까지 갔다. 그의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만성피로는 만성피로로 점철된 곤혹으러웠을 하루를 대견히 견뎌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박다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