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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원리 연가-문장대 제24집

김남권 2024. 1. 3. 08:49

사자死者의 밥

김경식

씹는 법을 잊었지
그건 이승의 법도

통 입맛이 없구나
소금기 하나 없는 맑은 국물에

말아 넣은 어머니
흰밥 한 숟갈

기제사에 오신 듯
젓가락은 시늉으로 옮겨 짚을 뿐

우물우물 몇 모금
삼켜 넘기고

잘 먹었구나
조용히 상을 물리시네

생시인 듯 꿈인 듯
어슬한 경계에서

씹는 일은 오롯이
남는 자의 몫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배추는 계란의 노른자처럼 노랗게 안으로 꽃핀다

김태원

자기 몸 허물어
뭇 벌레들에게 다 내어주고
언제나 흙 묻은 누덕옷에
허섭만 키우는 줄 알았는데
찬 바람 불고
온 산천 비루먹을 때
터진 끝 공처럼 말아 몸 부풀리고
추상秋霜의 빈 들녘 홀로 지켜내더니
멀리 길 떠났던 동장군 데리고 돌아와
흥부네 박 터지듯
온 뜨락, 무더기무더기
옹골차고 눈부신 황금꽃 쏟아 놓았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묵향

김록수

까만
두루마기
하얀 깃 달고
정갈하게 오시네
지팡이 없이 오시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낙엽의 길

김진율

매달려 곱더니
떠나는 길 춤사위에

달님도 길게 목을 뽑는다

뭍에서 빛나던 세월
물에 비쳐서 아름다운

낙엽

가는 그 길 어찌
꽃이 아니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달빛 위로

밤마다
바람구멍 숭숭 뚫린
늙은 나무
신음소리 서럽다

견디기 힘든 괴로움
견딜수록 깊어지는 시름

적막에 휩싸인 밤
고요하다

한 순간이라도
지독한 아픔 잊을 수 있다면

어둠 헤치고 어루만져주는 달빛 위로

굽은등 곧추세우려
숨 가쁘게 몰아쉬며
회한의 눈물에 휘청
속울음 삼키는 고독
벗 삼아 하얀 밤 지새우는

노송 한 그루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충북 보은이 고향인 문인들이 만든 보은문학회 문장대 제24집 '두원리 연가'가 출간되었다.
보은에 살고 있는 문인들과 출향 문인들 작품까지 시와 산문이 고르게 수록되어 읽을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보은문학회 김경식 회장은 발간사에서 '예술의 어떤 갈래이든 작가는 고뇌하는 사람입니다. 부조리한 사회와 시대를 괴로워하고 불완전한 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새워 고민하는 사람입니다.'고 밝히고 문집을 발간하는 심경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