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김성춘
혹,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기억나세요?
카르페 디엠
...오늘에 집중하고 현재에 살라
키팅 선생께서 첫시간, 제자들에게 온 몸으로 가르치던 말
그리고 또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향기 나는 선사의 설법 같은
도 우트 데스
...네가 주니까 내가 준다
이 말 속엔
머리에서 가슴까지 사랑이 내려가는데
무러 70년이나 걸렸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뭉클한 말씀도 비치는데요
숨마 쿰 라우데!
...최우등
선사의 법어 같은 시냇물 소리
새소리
귀 기울이면 낙엽 밟는 소리도 가만히 들리는
오랜 내 친구 같은
오오
청청한 영혼의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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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노골적이 되어 간다 3
권영해
후회는 늘 뼈가 아픈가?
반성은 왜 뼈가 저리도록 해야 하는가?
세파를 견디는 힘은 뼈로부터 나오고
이 세상 모든 맛도
뼛속 깊이 스며 있다
각골난망이다
"노골적" 속에는 늘 회한이 있고
참회를 삶고 끓이면
뼈가 드러난다
등뼈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데
단합을 과시하며 잔뼈가 굵어지던 그때
졸지에
골병든 세상에 나와
축적했던 골밀도를 우려내며
단, 짠, 쓴맛 고스란히 쏟아 내니
오늘 요리의 골자는
시원하고 홀가분한
분골쇄신탕이다!
멸치는 저렇듯
노골적으로 뼈째 마음을 드러내는데
난 아직도
뼈 있는 말 한마디
만들지 못했다
그럭저럭
또 하루가 저물어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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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박마리
오늘도 우리는 섞인다 섞인다는 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것으로 밥 먹은 지 오래되었어도 어제 밥 먹은 것처럼 다정이 필요하다 그게 서로 알아 가는 것으로 나 자세고 너 자세라는 걸 우리는 안다
늘 같이 해도 때론 같지 않을 때가 있다 같지 않다는 건 다른 것으로 너는 나를 이해 못하는 거고 나는 너를 이해 못하는 것이다 그건 네가 내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고 나는 네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내 안을 보지 못한 너를 이해하기로 한다 너를 이해하는 건 너의 일이 내 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거고 네 안을 못 보는 나를 이해하는 건 너 또한 네 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괜찮아, 그게 뭐라고. 이런 너도 이미 나를 안다는 거고 괜찮아, 이해해 이런 나도 이미 너를 안다는 것이다 안다는 건 다가가 스며든 것으로 내 일을 만드는 것이고 너 또한 다가와 스며드는 건 네 일을 만드는 것이다
때론 네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 섞이지 않는 건 가까워진 걸 멀어지지 않으려는 거고 멀어진 걸 가까워지기 위한 쉼표로 함께해야 한다는 오늘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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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미자
정창준
죄는 종종
셔틀콕처럼 가벼워서
여자, 시를 쓰네
좀처럼 라켓이 닿지 않는
셔틀콕 같네 가로등 불빛 같네
셔틀콕이 그려 내는 포물선처럼
우아하고 싶은데
세상은 골목 끝의 어둠
아무도 대답하지 않네
늙어서 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추한 사람이 그렇게 늙은 것이어서
그래도 괜찮아서
죄를 먼저 배운 어린 것들이
아네스의 작은 몸을
검은 물속으로 밀쳐 넣는다
너희는 죄를 보는 대신
죄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했지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습관적으로 꽃을 들여다보듯
시는,
흰 공책 대신
검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흰 배 위에 몸을 싣고
흘러가는 시신을 따라 흘러가는 일
무거워진 몸을 끌고
울음의 언덕을 향하는 저녁
더럽혀진 강이 스스로를 감추는 시간
너는 홀로 서서 한 발을
검은 강 속에 담그고 있었네
절룩거리는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실눈을 뜨고
다리 없는 검은 개가 되어
끝없이 죄를 핥아 보는 일이
시 쓰는 일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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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를 품다
김익경
바다가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바다가 있는지 모른다 단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를 보기 위해 이사를 한 것도 아니다
처음 바닷가를 둘러본 것은 옆집에 인사하듯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 후 나는 옆집도 바다도 멀리한다 멀리는 얼마만큼의 거리인지 나는 모른다
이제껏 바닷가로 피서를 가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매일 바닷가에서 바닷가로 츨근하고 바닷가로 퇴근한다
질긴 바다, 질긴 것들은 모두 봉인된 관처럼 함부로 뚜껑을 열 수 없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위로합니다
바다에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하다
바다는 멀리를 품고 있다
자꾸만 바다가 나를 가깝게 한다
나는 언제든 멀리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