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서순남
아무렇게나 그린 약도
쌓인 말이 흙먼지로 굴러다녀도
저녁은 계속
오른쪽으로 맴돈다
한 차례 일렁인 어둠
쓰다만 시에 걸터앉았다
직사각형 질문
단답형 대답
가방에서 삐져나온다
몸에 착 감길 시어 찾아
비어가는 신갈나무
머리숱
꽉 문 두 입술 힘 뺀 낙엽
넓은 손뼉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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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멀미
나비 걸음으로 가득한
저 달의 숨결
비가 다녀가는
새벽 소리를 봐야지
답답한 보정 속옷 벗어던진
주근깨 가득한 콧잔등
흘려버린 어느 시절
들여다보고 싶었던
이야기속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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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에 입술을 두고 내렸다
몸 비틀고 솎아낸 부호
오늘은 잠꼬대 붙들고
겨울비 그친 새벽 도로
걸어가야겠다
바람 드나드는 돌담 구멍
꼬리 흔들며 다가오는 개
마른세수 한번으로
수줍음 터뜨리는 제비꽃
해 잘 드는 곳에 앉아
새 달력 나오면 가장 먼저
너의 생일에
동그라미 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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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는 구우면 더 맛있다
어제까지 디뎌놓은
꿈 한 칸
해진 설명서 같은 구두
다시 발 끼워넣는 아침
풀어진 걸 못 견디는
귀퉁이까지 각 맞춘
얼굴 요리조리 바꾼다
보내지 못한 숫자
탁자마다 수북하고
꽉 낀 목풀라 같았던 하루
찾아든 포장마차
온전과 완전을 찾아 헤매어본
낯선 등끼리 토닥이는 위안
찬물에 오래 있었던 사람처럼
열은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늦게 피는 꽃도 꽃이다
꽃이다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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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울지 않는다
바늘귀에 꿴 연애소설 한 구절
촘촘하게 박음질해 두고
처마에 달린 풍경 집적대거나
제비집 볼륨에 참견한다
어떤 소리도
짊어진 배낭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산 그림자만 묵묵히 듣고 있던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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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대상을 비유하여 울림을 준다. 시를 읽으며 희로애락의 인생이 유비된다. 살아온 내력으로부터 마음을 다스리며 심금을 울린다.
생각을 전개하는 방법이 시인마다 다른데 서순남 시인의 두번째 시집 '멜로는 구우면 더 맛있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시 제목과 말을 아끼는 화자이다.
표제시 멜로는 구우면 더 맛있다는 푹신한 촉감을 자랑하는 마시멜로 사탕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연상된다.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도 연상된다.
서순남 시인은 절제된 언어와 시의 표현 구조 속에 그리움과 아쉬움과 열정의 시간 의식을 담고 새로운 시 세계를 이루는 중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군상이 일상의 구체적 경황속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박수빈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