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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삭 잔털에 머문 햇살-詩林동인 제7집

김남권 2023. 1. 21. 09:36

[초대시]



이홍섭

바다 위로 손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불굴의 삶을 살았던 노스님이 응급실로 실려가며 손을 흔드신다

화장장에서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우신다

바다 위로 손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깃발처럼, 섬처럼 떠올라 펄럭인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안부를 묻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낙과

허 림

복숭아가 떨어져 있다

만개한 복사꽃 보며
언제쯤 오면 되겠냐고 물었을 뿐
구름은 안부조차 실어오지 못했다

비는 자주 내리고
어쩌다 눈 마주하는 복상
푸른 멍울엔 햇빛과 달빛의 여운이 감돌았다

언제쯤 오면 되겠냐는 문장이
속살 깊이 발그레하다

며칠 있으면 되겠구나 싶은 날이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별세처럼

복숭아가 떨어졌다

익었거나
속 많이 아팠을 그대를 생각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목류

한영숙

불편하게 쥐었다
놓았다
다시 움켜 잡았다

아프고 아픈 기억의 흔적

오랜 시간 결을 삭인 그곳에
되살아난 숨처럼
새순이 돋았다

누군가와 작별을 한 사람
오래 서 있다가

조용히 울고 간 자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회원시]

백로

김영삼

갈아 놓은 밭에서 백로 한 마리
한참을 섰다 한 걸음씩 세월없이 간다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 많은지
온몸이 "?"

한 발을 앞으로 내밀 때 모가지도 앞으로 늘어나고
내민 발이 땅에 닿을 때 모가지도 도로 오므라들고

한 발짝 옮길 때마다 허물고 새로 짓는 물음표

초짜 농군이 신기한 농서를 보듯
밭이랑 골똘히 들여다보다 잠시 먼 산도 보고

가끔 큰 답을 얻었는지 목을 쭉 내뽑아
온몸이 "!" 표다

홀로 묻고 홀로 답하며 홀로 가는 몸이 눈부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버섯의 노래

김은미

꽃으로 태어나는 걸 싫어했다
차라리 아주 작은 나무로 태어나길 원했던 것이다
나뭇등걸에 달라붙어 떠날 줄 모른다

이마 깊숙이 모자를 눌러쓰고
실눈 뜨며 짝다리 한 채
세상을 훔쳐보고 있는 너

꽃보다 아름다운 얼굴 숨기고
느글진 곳에 조용히 서서
눅눅한 마음을 감추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존재를 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그냥 너의 노래를 불러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떤 부부의 이야기

유지숙

말에는 꼬리가 있어 서로 당기다 보면 주먹질이 오간다고 눈퉁이 밤퉁이 되고
사니 안 사니를 노래처럼 하다가 무릎을 꿇으며 미안하다는 말에 쓴 커피를 넘기는 순간
웃음이 터진다는 그녀, 또다시 자동으로 사랑은 로그인되고

부부란 참 알 수 없다

몇 주일 후 똑같은 내용을 듣고 문을 두드린다 이제는 정말 아웃이야 보랏빛 눈퉁이로 달려온 그녀 보랏빛이 노랗게 피어날 때쯤 다시 잠금 해제 되었지

뜨거운 국밥 한 그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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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폭포

지은영

거울이 생기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젊음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탑을 쌓아
우뚝 서 있으려 한다
그 탑이 기초가 탄탄한지
균형이 잘 맞는지 알지 못한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취해
거울을 보는 것도 거부했다
어느 날 문득 물에 비추어본
모습에 화들짝 놀라 뛰어든 절벽
웨딩드레스를 입고
다소곳이 기다리는 그녀의 숲엔
서슬 퍼런 강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