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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고도 멀도록-김혜숙 시집

김남권 2023. 7. 16. 10:39

온다는 것은

김혜숙

피고 지는 일이
꽃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니 사람의 일도
흐름에 가고 또 오는 것

봄도 때가 되면
그들의 생과 삶이
단단한 지면을 뚫고
용감이 온다는 것도
겨우내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것이 있었으리

바라지 않는다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다가선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보다 기쁜 것

먼저 베풀고 먼저 열고
그보다 내가 넓어야
그가 온다는 것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깊고 푸르게 여무는 날


마른 창공은 문을
활짝 열어 받아들인다

벌과 꿀이 서로 안고
깊고 푸르게 여무는
날을 맞이하고

난 깊어가는 사랑의
전갈을 꽃송이에 밀어
넣고 그들의 답장을
나란히 펼쳐 보려 한다

아름다운 초원의 들녘
활짝 펼쳐진 칠월은 은밀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 사람


내 꿈발에
누군가 꽃씨를 심고 갔다

하늘에 핀
구름

사시사철
우러르게 하는 사람의
발자국이 향기롭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지夏至


그렇게 서로 처지가
바뀜을 모르고

길이를 재보며 흉을 만들고
자리 바뀜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별거 아닌 것
하지 말 것을 한 것같이

똑같은 처지가 되고 보니
그동안 애쓰지 말 것을

밤은 낮을 탓했고
낮은 밤을 탓했던 것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득하고 멀도록


그리움은 앞산에서 뒷산으로 숨는다

구름이 내 눈에서 뒷머리로 돌아
바람을 끼고 돌 때 와르르 쏟아지는
나뭇잎부터 바닥을 치고

메아리를 불러 그리움을 찾아 헤매다
두 다리를 뻗고 우는 나뭇가지를 본다

그렇게 계절마다 아득하고 멀도록
그리움이 서성 서성 가슴을 치다가
앞산이 부르면 뒷산이 대답하는
잘 있다 말 가운데 멀리 달음질치는 매시간
어머니도 그러했고 나도 그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은월 김혜숙 시인은 농사를 짓기도 한다. 농사를 지을 줄 알거나, 적어도 농사를 아는 시인이 진정성의 시를 쓸 확률이 높다.
시는 농에서 온다. 수렵시대를 지나 정착 농경사회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농경가, 풍년가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가는 점차 시가가 되고 다시 시가 독립 분리되면서 전문화의 과정을 거쳤다.
농사는 제 일의 겡제이고 경제는 시작의 현실적 토대가 된다. 은월 시인은 그의 충실한 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햇살 좋은 양평에 작은 농원을 마련하여 경작한다. 시인은 많은 곳을 보고 여러 현상의 꽃을 관찰한다. 그때 시인은 대상적 사물의 본질 속으로 즉각적 투신을 감행한다.
은월 시인은 시단의 방법적 시류에 흔들림이 없이 직관적이고 포괄적인 자신의 고유한 시법을 개척해 왔다.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유, 역동적 언어와 직통적 교감의 경이로움을 다시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조명제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