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종소리
이홍섭
본 적 없는 시인의
첫 시집 해설을 쓰다가 문득
네루다의 종소리를 들었다
그는 칠레에서
나는 한국에서
비슷한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심한 멜랑꼴리에 빠지면서도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을 노래했다
첫 시집의 종소리는
발끝을 간지럽히는 어여쁜 파도 같은 것
첫 시집을 낸 시인은
자나깨나 네루다를 호명했는데
태평양 건너까지 그 소리가 들렸을지 모르겠다
그가 사랑한 칠레의 바닷가에
이제 그는 없고, 태평양을 건너온 파도만이
지금 내 발밑에서 철썩인다
첫 시집 해설을 쓰다가 문득
네루다가 사랑한 바닷가의 종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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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
노스님 가신 지 삼 년
부도에 삼 배 올리고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털레털레 내려오는 길
스님은 절을 올리고
나는 그 마당에서 탑을 올렸으나
하늘과 땅 사이에
그림자 하나 없다
먼 훗날
한 산골 나그네가 이 골짜기에 들면
하늘 한번 보고
땅 한번 보고
다음과 같아 노래하리
절골에 절이 없고
탑골에 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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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2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불빛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한 마리 어두운 짐승이다
내장이 터져나가는 울음을 두 손으로 막으며
오로지 불빛, 불빛으로만 당신에게로 간다
나는 밤바다보다 더한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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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홍섭 작가의 여섯번째 시집 '네루다의 종소리'를 읽었다. 그의 산문집 '곱게 싼 인연'을 가슴에 품고 심장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백담사에서 유발상좌로 스승인 조오현 스님을 모시고 살았던 십 여년의 세월과 스승을 떠나 보내고 문득 문득 그를 떠올리며 내설악의 물길과 바람 소리를 따라가는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소에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본적이 없는 그의 심성이 무영탑을 지나고, 제비를 발견하고, 코스모스와 맨드라미 패랭이꽃의 숨결을 지나 햇봄, 청개구리의 몸짓으로 돌아와 다시 옛 백담사에서 스승을 곡哭하며 안거에 든다.
그동안 출간한 <강릉, 프라하, 함><숨결><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터미널><검은 돌을 삼키다>에서 느꼈던 서정적인 시의 울림이 잔잔한 파도로 밀려와 가슴을 흔들고 간다.
모든 시가 궁극적으로는 한 편의 시가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이홍섭 시인의 시집은 가만히 앉아서 갤러리에 걸려 있는 수십 편의 개인전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평생 처음 그림을 발견한 산골의 노인도 그림을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보는 기분이랄까? 표제시 '네루다의 종소리'는 7년만에 내놓은 그의 심장속 법고루에 매달려 있는 쇠북을 울리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종소리는 세상을 울리고 다시 돌아와 회향하듯, 시인 이홍섭이 그리는 시의 그림은 자연스럽고 편안하지만 피눈물이 고인 붓을 들어 한자 한자 써내려 간 사람의 내면을 진정한 그리움의 서사로 풀어낸 바라밀이다.
-시인 김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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