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의 둘레
이송희
내 울음의 뿌리가 어디인지 알았지
지하 방은 좁고 깊어 무엇도 닿지 않아
그림 속 낡은 둘레가
깃발처럼 펄럭인다
색이 번진 표정은 도무지 알 수 없어
맨 먼저 닿은 언어를 빵 속에 섞는다
거울엔
조각난 내가
맞춰지는 중이야
중심이 된다는 건 외로운 일이지
왜 나는 흩어지면서 내면을 겉도는 걸까
모르는 울음의 거처를
내게 다시 묻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비의 감정
당신은 무식하게 폭언을 쏟아낸다
말 한마디 건넬 틈 없이
문 앞에 붙인 독촉장처럼
언제나 사선으로만 뒤통수를 내리친다
송두리째 쓸고 갈 듯 밀려오는 소리들
기다란 벽에 붙여 당신을 피해 다닌다
금 간 벽
틈새로 들어오는
매서운 통보들
수장한 꿈들은 어디로 쓸려 가는지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유서가 떠돈다
오가던 길이 잘린 채
속수무책 밤이 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림자 노동
키오스크 앞에서 커피를 주문한다
레귤러 사이즈에 휘핑크림 얹은 후
순서를 기다리면서 놓친 말을 곱씹는다
바닥에 가라앉은 시간마저 버리면서
멈출 수 없는 바퀴로 사는 나를 또 돌린다
안내된 문구를 따라 바코드를 찍는 오후
샷 추가된 피로가 종이컵에 쌓이는 동안
등 뒤의 모래시계도 쉼 없이 흘러간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림자가 되어 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발랄한 시들을 읽으면서 희미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건 생의 필연적인 '어긋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기억은 당신을 붙들지 못하고 이 세계의 질주를 멈추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자의 슬픔, 그것이 생의 비애다. 그래도 시인은 발랄한 시를 쓴다. 시인은 그것만이 남루한 생을 위로할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정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