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비결
안애정
올해는 말을 조심하란다
혀만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
몸에 꽃이 핀단다
용띠 뱀띠와 섞이지 말고
말띠 토끼띠와 어울려 놀란다
어쩌나 내 서방이 토끼띠인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냥이라는 말
그냥이라는 말은 관심을 요구하는 말이었어
무심함 속에 의문부호를 숨겨두고 모호한 태도로 접근했으나 집중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지
어느 방향에서나 손 내밀 수 있게 약간의 친절함을 갖추었지만 적당히 무관심으로 비껴가도 미안하다는 형용사로 얼버무릴 수 있는 틈도 허락했지
이른 새벽 눈 속에 파묻혀 죽은 까마귀가 발견되고 얼어붙은 강물 사이에 갇힌 큰고니가 발견되는 아침9시
하늘과 하늘 사이에서 혼자 발견되는 산과 산 사이에서 혼자 죽어가는 물과 물 사이에서 혼자 떠 있는 의문사가 늘어가는 밤9시
아침과 밤이 돌고 돌아가는 길 위에서 그냥이라는 말이 접속사의 무게로 다가설 때가 있음을 알았지
네가 던진 그냥이 포함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어느 낮에는 온종일 걸어 다녔고 어느 밤에는 풀밭 위에서 돌아다니는 양들의 수를 세었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어, 난 너를 그냥 기다리기로 했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혀의 꽃
오늘 혀가 가출합니까
내일 혀가 출가합니까
가출과 출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자유 갈망하는 손이
문을 열고 나갑니다
무료함 견디지 못한 말이
길 따라 무작정 걷습니다
혀가 사라져 심심한 입은
껌을 씹습니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풍선껌
뻥 하고 터지면
사방에서 침이 들어옵니다
혀에 꽃이 피는 순간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애정 시에는 자기 앞의 삶을 순정한 마음으로 대하는 이가 있다. 그의 언어는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곳의 자연을 닮은 소리의 울림을 지녔다.
인공이 가미된 제조물이라는 느낌이 없는 시, 어휘 하나하나에 시인의 성품이 배인 시를 쓰면서도 때로는 과감하게 자기 해부를 단행한다.
말을 아껴 정제된 언어로 쓰는 안애정의 시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언어의 알맹이라 해야 한다.
이야기가 살아 있으면서도 서사를 앞세우지 않으며, 지적인 사치를 부리지도 않고, 우리말을 찾아 쓰면서 서정을 잃지 않는다. 그가 선택하는 언어는 마음의 지향에 잘 맞는 풍모를 지녔으며, 진정한 마음을 담아 의미의 지층을 만들고 있어서 울림이 깊다.
-김효숙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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