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꽃바람
김완수
봄날엔 하동에 가야 한다
섬진강 동쪽은 이미 벚꽃의 영토
꽃은 바람을 부르고
바람은 하동에 둥지를 트니
나도 하루쯤 여기서 묵는다
하동에서 구례 가는 길
바람 몰래 길을 나선다
강과 산이 부둥킨 곳이라
나무들은 경계를 모르고
꽃은 화환처럼 피어 있다
내가 하객으로 들어설 때
허겁지겁 달려온 바람이
나무마다 흔들며 봄을 묻는다
나는 하늘거리는 나무
허공에 봄이 폴폴 날릴 때
내 젊은 날들도 따라 흩날리는구나
봄은 하동에서 시작한다
봄빛이 구례까지 이어지고
바람이 한걸음에 달려가도
나는 장터에서 쉬어 가야지
내 여정은 하동을 다시 찾는 것
바람보다 먼저 찾아가리라
봄날이 꿈틀거리는 하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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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다음 생엔 꽃무릇으로 태어나리라
외딴 산기슭도 좋으나
무릎 높이로 자라
당신의 걸음걸음 잡아채리라
나를 보지 않는 당신
눈 돌리면
우르르 지천으로 피어나고
눈 감으면
시뻘건 목소리로 부르리라
가을밤 달빛도 없어
그냥 지나칠 땐
축축하게 말해 보리라
바람처럼 꽃대만 건드려도
나는 발 아래까지 달아오르리
내 푸른 잎 같은 당신
내가 하늘 향해 누운 것은
당신이 하늘이기 때문
당신을 보지 못한다 해도
다다음 생엔 또 꽃무릇으로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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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진실을 더듬을 때
가래가 끓기 시작했다
헛기침보다 먼저
진실을 내뱉게
누가 내 거짓된 입을
불로 담금질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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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에게 전통적 시간이 지시하는 내면세계의 보편적 가치관/구심력이 본질이라면 외향적 망향의 공간을 바타으로 한 방랑/원심력은 차이(변화)
로 볼 수 있다. 그는 본질과 차이를 동시에 아우른 시인으로, 어느덧 시의 혼과 육질을 결 따라 흔적 없이 주무르고 있다.
-김규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