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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위한 팡파레-맹숙영 시집

김남권 2023. 12. 23. 06:03

봄, 다시

맹숙영

와 좋다
순간 현기증으로 어찔하다
갑자기 터지는 탄성의 입술
새 푸른 꽃잎처럼 피었다

간밤의 꽃샘추위
얄미운 밤바람에 치맛자락 휘둘렸지
다시 제자리로 잡아당기다
쫘악 찢어지는 소리
와 겨울이 동강 나고
봄이 활짝 열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메리골드 금잔화

황금빛 사랑 품어 안고
태양빛을 찾아 하늘로 오르네

작은 꽃잎 하나씩 열고 닫으며
사랑의 결실 맺으려 하네

태양을 감추어 버린
구름 신의 질투를 어찌하리

못 이룬 슬픔 이슬로 맺힌 눈물
하늘 향해 황금빛으로 물든 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수박

통통통
잘 익었을까
...

통통통
덜 익었을까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계

고운 들꽃 만발한 언덕에서
잠시 바람 쐬며 쉬어가자 해도
당신은 곁눈질 없이 언제나 노 코멘트

초침과 분침과 시침을 거느리고
한결같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리
자기 본분을 지키며 같은 보폭으로
우주 속의 지구를 걸어가지요

영원히 궤도 선상에만 있는 당신
그곳에서도 기다리는 사람 만날까요
강을 지나 산을 만나도 다만 스쳐 갈 뿐
멈춤 없이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지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식탁 위의 파노라마

아침 식탁 위
해맑은 자리
쇠고기 무국 대접 속에
먼저 와 자리 잡은 빨간 해가
미소 짓고 기다린다

저녁 식탁
초원의 뜨락엔
콩나물 맑은 국그릇에
언제 내려왔나
하늘 별아기들
눈 깜빡깜빡 초롱초롱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맹숙영 시인의 시는 자연스럽다. 쏠림도 과장도 없다. 다양한 경험과 추억력(기억에 상상력이 가미되어 더 간절해지는 상상력)을 의미하는 시인의 서사 안의 공간적인 논리 속에서 시의 서술은 유연한 흐름이다. 깊고 길게 바라 보는 법, 넓게 보여주는 풍경과 오래 기억하게 하는 긴 역사성을 연상 시키는 시의 시선은 시인의 단면을 벗어나 우리들의 내면을 자유롭게 펼쳐 보여준다.
실제로 시인의 서사는 발끝의 언어들이다. 발끝이 가고자 하는 다채로운 문장부호들은 얼마나 자유자재로 사용되고 있는가?
시인은 그 자유로운 호흡은 절제된 시적 긴장을 중심에 두고 있다. 단어와 조사, 문장과 통사, 어조와 화법은 세련되고 그러면서 절제와 균형을 보인다.
-최창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