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새냉이꽃
이구재
진흙 바닥이라도 좋아요
그댈 기다릴수만 있다면
텅 빈 논바닥에서
모진 추위도 견딘 걸요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 되면
당신의 눈부신 날개 빛깔로
흰 꽃을 피워
봄소식 가장 먼저 알리겠어요
사무치는 그리움이여
한 오백 년이라도
외발로 서서
그대를 기다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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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편지
집 앞 이층집이 헐리니
안 보이던 뒤뜰이 보인다
거기 우두커니 나무 한 그루
거무튀튀한 맨몸으로
빈 뜰 지키며 겨울을 나더니
어느 날 발그스럼 꽃망울이 보였다
주문진 봄바람은 거칠고 사나워
장독 뚜껑도 날리는데
용케도 분홍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
곱다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로
칭찬해 주고 싶은 저 살구나무
엷은 분홍 꽃잎을 온 동네 흩날리는데
집 팔고 이사 간 주인에게
봄 편지를 보내는 거 같다
아무래도 올봄은
마스크 안 써도 되는
살구나무의 봄이로구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임이 오신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
다 스러진 뒤
천만년을 침묵한 뒤에라도
임이 오신다면
나 깨어나 손을 내밀겠어요
혹 그대
날 몰라보신다면
복숭앗빛
무릎을 보여 주겠어요
내 몸의 전부 중에
제일 예쁘고 향긋하다
하신 말
천만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거라
했었으니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벼랑에 서면
텅 빈 마음 슬퍼질 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오른다
철썩이는 파도는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다시 오는 꼴이
내 삶과 같아
왈칵 안기고 싶은 날 있었다
저 바다 심연에
한 천년을 견디면
자수정 빛 별 되어
영원히 반짝일 수 있을까
밭일이 바다인 벼랑에 서면
뜨겁게 뜨겁게 역류하는
그런 생각
외람되어 지금도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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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사랑입니다. 행복은 물질을 통해 얻는 것보다 예술 작품, 문학을 통해 얻음으로써 안식과 평화, 소망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이구재 시백께서는 독실한 종교적 신앙의 시인입니다. 그렇거에 그의 믿음을 빌리면 그의 시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마련해 준 자연에서 시적 정서를 담아 창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과 죽음은 이미 신앙적인 사랑과 믿음의 세계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등단 이후 자신의 개별적인 자기 서정성을 지켜온 시인은, 여전히 아름다운 서정성에 기대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의미에 대한 신앙적인 내면을 믿음의 이미지로 그려 보입니다.
이구재 시백님의 시정은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입니다. 서정성의 시혼이 읽는 이의 가슴 어느 곳엔가에서 예쁘게 물이 들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진원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