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변선우
만세 선인장을 선물 받았다
도저히 옮겨 심을 데가 없어서
마음에 심어버렸다
선물한 사람이 선인장이 잘
크냐고 물으면, 배시시 웃었다
마음이 동요할 때면
야단을 맞거나 상스러운 일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간지러웠다
긁고 싶었으나 닿을 수 없었다
뿌리 탓이었다
마음의 부피, 결국 몸의 부피 탓이었다
생활을 거듭할수록 나는 성장하였고
마음도 성장하자 선인장도 무럭무럭 커다래졌다
흉부와 복부가
지속적으로 부풀어올랐다
갑갑해졌다 자연스럽게 다짐할 수 있었다
내가 죽는 날
우리는 함께 가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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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천상에서 지상으로
벌거벗은 몸들이 내려왔다 수억 년 전에 목격하였는데, 이제야 고백을 하게 되었다 검디검은 몸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돌았다 신나게, 더 신나게, 지상의 종種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더 큰 원을 그리며 돌 수가 있었다 누군가는 대지에, 누군가는 산악에, 누군가는 해양에 들어가 돌았다 원은 계속해서 커다래지다가, 더욱 빠르게 돌아가다가 폭풍이 되었다 나만 빼고 폭풍이 되었으므로, 나는 빈방에 들어가 빈 병을 제공받았다 빈 병을 휘휘 불어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불고 있다 빈 병의 표피에 자잘한 금이 빼곡한 것이다 자꾸만 코를 파고 싶기도. 방귀를 뀌고 싶기도 한 것이다 (어제는 창밖의 거대한 파도를 목격하였다 거기에서 뻐끔뻐끔 솟아오르는 공기 방울도 보았다)
폭풍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별똥을 떨어뜨리려고, 나더러 목격하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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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마음
나무를 자르고 깎아
책상을 만들고 의자를 만든다 나는 거기서 시를 쓴다
주검의 시, 죽음 이후의 시, 이후의 시는 자꾸만 나를 지속한다 만남과 마찰, 그러다가 스파크! 쓰다 말고 책을 들춘다
자크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 나는 얼마큼 이방인인가, 너는 얼마큼 이방인인가, 뒤통수를 긁고, 등허리를 두들기고 나면, 엉덩이가 배기는 것이다 사냥을 나가, 가죽을 취해 돌아온다 너는 얼마큼 이방인인가, 바깥은 정말로 견고하므로, 의자에 가죽을 깐다, 거기에 앉는다
메마른 양초에 불을 피운다
주검의 시간, 죽음 이후의 시간, 이후의 시간이 나를 뉘우친다 가죽이 나를 덮는다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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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 파티
나무는 누울 줄 안다 물은 일어설 줄 안다 나는 여태껏 의자에 앉아 있다 어느 날, 선물 받은 의자였다 새로운 것은 항상 흥미로워서, 맨몸으로 앉아 경건해진다 의자가 빗속을 떠돌아다니던 걸 목격한 적 있다 모든 것에 질려버린 거라고, 일기에 적는다 나는 의자의 자세를 한참 따라 했던 적있다 가끔 젖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축축한 것엔, 온기가 있다 나는 그래서 맨몸인 거다 돌은 죽을 줄 안다 바람은 선명해질 줄 안다 아는 것만큼 두려워지는 건 없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여태껏 의자에 앉아 있다 의자는 네 발에서 두 발로 체형을 바꾸는 중이다 자꾸 가까워진다고, 일기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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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없는 것들,
목소리가 작은 것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들,
연약하며 취약한 것들,
쉽게 스러지는 것들,
선명하게 떠올랐다
받아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