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울음
신순임
지령받은 공작원같이
주위 살핀다
좀체 주파수 잡을 수 없다
암호 해독하려는
안면근육
죄다 차렷 자센데
다음 지령 날아든다
숨소리 죽이는 신경 사이로
간헐적 망치질 더 빨라질 때
검거장 날려
일망타진하는 타이레놀
암호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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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미뤘던 모시 한복 풀 먹이고
다림질하는 한낮
면티 해바라기 가슴팍 착 엉개붙어
고인 땀방울 빨아내는데
콩국수 시켜놓았다는 지인 전화
입은 대로 뛰쳐나갔더니
골프웨어 입은 중년 부인 옆자리
앉고 보니 양말 구멍 꽤나 크다
콩국수 한 그릇 비울 동안
대자리 앉아 눈 내리깐 샤넬 가방 피해
치마 속 숨어 에어컨 바람 쐰 엄지발가락
쥐 내려도 찍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읍내라 깔본 심보, 수백 번 더 나무라고
지인이랑 옳게 눈 못 맞추고
사거리 신호까지 어기며 당도해
패댕이 친 양말
세탁기는 애기 다루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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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원서
애주가와 마주하는 저녁상
반주로 받은 막걸리
갱년기 앞 감주 되는데
든 자린 표 없어도
난 자린 표난다는 말로
막내 빈 자리 확인하며 입술 축이지만
한 잔 못 벋어나는 반년이
고개 숙여 만망함 포장하는데
남편의 아쉬운 눈빛 포기 잊은 어느날
한 잔의 경계를 넘을락 말락 할 적
안주 없다는 핑계로 내려놓았더니
소금 중발 내민다
탁주의 진정한 안주 입증하는 물증으로
꾼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 앞
구운 소금으로 입가심하며
주당酒黨에 입당원서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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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껌
잠 덜 깬 아이 마른입에
간장 비빈 밥 한술 물리고
급하게 자동차 운전대 잡는데
안개가 삼켜버린 마을 다리 위
중년 여성 넷이서 이정표 확인하며
여유있게 담배 피우기에
양동마을은 목제 건물이 많아
금연이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쓰미마셍"한다
한 바퀴 돌고 오는 분통골 입구
초가집 배겸으로 사진 찍는
그 여인들 유창한 우리말
푸욱 불어 터트리는 바람 풍선
허공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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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단오 지난지가 언젠데
분통 같은 집 틀어박혀
맨날 먹고 싸고 먹고 싸
댓돌 위 똥탑만 높이기에
야, 이놈들아
나가서 똥 싸면
어데 덧난다더냐
큰소리로 나무란 뒷날
제비 오 형제 외출하며
문지방 얹어둔 문학지 표지 위
보랏빛 속내 까맣고 희게
휘갈겨 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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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임 시인은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 등록과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고택 무첨당의 안주인이다.
따라서 신순임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은 양동 물봉골 이야기와 친정인 경북 청송 불훤재 종택 안분당을 중심으로 한 고향 마을 사람들 이야기, 즉 시가와 친가의 사람 사는 모습과 미풍양속 기록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와 가슴에 품어오기만 했던 자연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진경산수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안에는 경상도에서 특히 청송, 안동 지방 토박이말들이 다정다감하게 들어앉아 작품 감상하는 재미와 전통음식의 재현으로 우리 민족정신을 한껏 북돋우고 있다.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