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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이육사 탄신 백주년 기념 시집

김남권 2023. 7. 30. 08:10

황혼黃昏

이육사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十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사막을 끊어가는 낙타駱駝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속 활 쏘는 인디안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텐을 걷게 하겠지
정정情情이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애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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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간 노래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 밤
앞내 강江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른 노래는 강 건너갔소

강 건너 하늘 끝에 사막도 닿은 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아서 갔소

못 잊을 계집애 집조차 없다기에
가기는 갔지만 어린 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래불에 떨어져 타서 죽겠죠

사막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 먹은 별들이 조상오는 밤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 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 건너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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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狂人의 태양太陽


분명 라이풀선線을 튕겨서 올라
그냥 화화火華처럼 살아서 곱고

오랜 나달 연초煙硝에 끄스른
얼굴을 가리면 슬픈 공작선孔雀扇

거칠은 해협海峽마다 흘긴 눈초리
항상 요충지대要衝地帶를 노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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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발갛게 피지 않는가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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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 올까 바란 마음


뵈 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 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울까 하노라

잠조자 없는 밤에 촉燭태워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오매라
저 달 상기 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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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35년, 내가 육사를 만난 것은 그 해 봄인 것으로 기억된다. 동경에서 돌아와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 때 서울 집이 명륜동에 있었다.
나는 가끔 위당 정인보 선생을 찾아다녔다. 당시 위당 선생 댁은 내수동에 있었다. 문을 들어서면 납작한 고가가 있었으나 꽤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어 외형보다는 훨씬 넓은 저택이었다. 서재는 온통 옛날 묵은 한적으로 꽉 들어차서 앉으면 책에 파묻히게 되었다. 그 속에서 선생은 갸름하고 가무스름하고 강직하게 생긴 얼굴에 우선 독특한 미소를 띠고 문장은 고금에 맹자를 덮어 먹을 게 없단 말이야 하며 들고 계셨던 맹자를 책상 위에 놓는 것이다. 이미 문장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사상론으로 해박하고 명랑하고 잔재미나는 선생의 말솜씨가 어느덧 보학으로 번져나가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다는 것의 법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육사를 알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의 해후는 참으로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나는 그를 만나자 곧 친하여져서 마치 죽마고우와 같이 되었다.
-신석초 이육사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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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의 40 평생의 마지막 10년 동안이었고 그의 나이 서른이 넘어서였다.
그 때 이미 그는 옥고를 치른바 있는 독립투사요, 일경의 이른바 요시찰 인물이었다. 따라서 육사는 그 무렵 다른 시인들처럼 문학 청년 시절을 가졌거나 20 전후에 시단에 등장한 경력을 갖지 않은 만성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시인이기 전에 지사요 투사였던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도 행동임에는 틀림 없으나 젊은 육사에게는 그 보다도 더욱 절박한 목표가 있었고 따라서 더욱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년에 시작된 그의 시작은 문재가 있는 투사나 혁명가가 써 본 글귀로 보기에는 너무나 본격적인 수련의 자취와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가 시작을 계속한 기간에도 그는 부단한 감시와 검속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것은 그가 남달리 초강한 기질을 타고 난 사람임을 절감케 한다.
-김종길 이육사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