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누보art nouveau
김나비
식물처럼 쓰러져 울지 않기로 약속해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높이뛰기를 해봐요
단번에 훨훨훨 휘는 불꽃이 될 수 있어요
우주선에서 내려와 첫발을 떼어볼까요
마음을 손에 들고 저글링을 하면서
구겨진 시간을 펴고 새로이 출발해요
절룩이던 초록별의 기억은 버리세요
당신이 당신에게서 먼지처럼 자유로운 곳
여기는 아루누보죠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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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도원
데이터를 내려받고 플랫폼에 들어가요
일상의 틈 속엔 별천지가 숨어있죠
아바타! 다인칭의 내가 그곳에 살아요
클릭 한 번이면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고
노랑머리에 장검을 들고 바다도 건널 수 있죠
손안의 무릉도원이 끝없이 문을 열죠
입장과 동시에 팔로워들이 반겨요
아바타가 된 멋진 나를 나조차 믿기 힘들죠
황홀한 메타버스 속 다른 삶을 즐겨요
이름과 얼굴 피부색도 수시로 바꿔요
어느 날 문득 무릉이 물음으로 변하겠죠
당신은 누구인가요 알맹이는 어디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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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슬립
도착하면 무조건 뛰어 누구도 믿지 마
지난 날이 후회되면 시간 속으로 건너가
통한은 얼어붙은 돌, 돌을 깨고 너를 꺼내
바꾸고 싶은 순간으로 고양이처럼 달려가
젖은 옷을 벗고 산뜻하게 다시 사는 거야
시간의 문이 열리고 넘어오는 미래 사람들
과거를 가방에 담고 벌거벗은 채 착륙한다
마블링이 된 시간 속 말라가는 오늘에서
얼룩진 순간을 닦고 새로운 어제를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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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의 시조를 보면 시각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당수의 현대시조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색하여 독백조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김나비 시인의 작품은 문명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전 쓰기에 힘쓰고 있어 톤이 굵다고 할까, 소재의 진폭도 아주 넓고 주제의 깊이도 남다르다. 시조의 전통을 지키되 그 어떤 자유시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현실과 현대를, 문명사와 미래 사회를 다루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