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와서
한기옥
포크레인이 찔레나무 둔덕을 파헤치고 간 다음 날
동박새 한 마리 잘려나간 나무 둥치에 앉아 해 지는 줄 모르고 지저귄다
집과 아이들을 잃었을 텐데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니니?
노래하는 듯 보이잖아
혀끝에 맴도는 말들을 참으며
천천히 그의 가락에 익숙해질 즈음
노랫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슬픔의 맨 끝방으로 가봐
너의 생이 최대한
슬픔을 다스리는 일에 정직해졌으면 좋겠어
세상에 노래가 될 수 없는 생이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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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닥 모를 사랑이
처마 끝에 매달린 무시래기
미라가 다 된 몸이
손끝만 스쳐도 바스러질 듯 위태롭다
물기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몸 어느 구석에
못다 이룬 꿈이 천형으로 남아
화탕지옥 같은 솥 안으로
머뭇거림 없이 뛰어들게 하는 것일까
이미 멈춰버린 듯 보이는 생을 녹이고 뭉개
다시 장렬한 최후를 살게 하는 것일까
한번 숨 놓은 몸을 추슬러 온전히 보시하고 나서
새롭게 태어난 어떤 영혼이
저 바닥 모를 사랑이
아침을 부르고
잠들어 있던 세상 곳곳을 깨워놓는 것일까
바람에 몸 뒤집는 시래기 속에서
살아 있는
부처도 읽히고 예수도 읽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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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징멘트
오늘 하루 노래처럼 사세요
아침 뉴스 보다가
파릇파릇한 아나운서 클로징멘트에 걸려 넘어졌다
나부끼라고
화내지 말라고
말랑말랑 보드랍게 살라고
냇물 흐르는 소리로
종달새 말하는 소리로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로
아침햇살 웃음소리로
노래하듯 살라고
당신 노래 흘러가
세상이 환해졌으면 좋겠다고
분명 내일은 어제보다 세상이 한 뼘쯤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
종일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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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옥 시인이 시인으로서의 자의식 속에 시의 기능과 효용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끊임없이 삶의 지혜와 성찰을 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을 긍정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 세상 도처의 당신은 자연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의 삶과 생태에서 얻은 지혜와 성찰을 통해 이 삶과 세계가 살만하다는 긍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긍정의 시세계가 시인에게는 시인으로서 자의식을 달래주는 힘으로, 독장ㅔ게는 슬픔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치유의 힘으로 작동할 것이다.
-이홍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