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날고파 그 독수리-이솔 시집

김남권 2024. 3. 13. 11:03

언어로 부활하다

이 솔

빙판길위에 신문지가 말려 굴러다닌다
빛나는 얼굴
고통으로 구겨진 빛나던 얼굴

빙판에 맞닿은 정신
혼미한 언어들 일어나 긴장한다

되풀이 되는 반성
매순간 새로 세우는 계획들이
깃발에 깃대에 휘감긴다
왼강히 감기며 깃발은 외친다
구겨지지도 낡아지지도 않는 차가운 언어
쏟아져내리는 말, 말들
하늘이 흔들거린다

차가운 언어가 정신차렸다
부활이다, 언어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불씨는 죽은 척할 뿐이다

불씨는
내색조차 않다가
불의 혀끝에 닿는 순간
하얗게 꽃으로 되살아나 춤춘다

진달래 능선에서 풀무질이 숨가쁘다
작은 불씨가 고개를 들고
능선이 들썩인다
오랜 기다림으로 타오르는
눈 간데마다 진분홍의 분신焚身들
목이 조여들면서 불길을 마셔버린다
진분홍 사랑에의 3도 화상
능선아래로 뒹굴며 구르며
능선과 계곡에 진분홍으로 불길 옮아 번진다

찬비 내리는
진달래능선에서 알았다
불씨는 죽은 척할 뿐이라는 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시 뒤집어 입었다

뒤집어 입었다
이야기가 숨어버렸다

협곡을 마주하는 길게 늘어선 암석
날세워 깎이고 주름잡듯 겹쳐지며
불끈 솟는 암석의 힘살
겨울하늘색 보다 찬 물빛으로 흐르는 깎인 계곡
이어지는 계곡의 이야기
가슴떨리는 소리와 흐름
매정한 발길로 계곡을 차버린다  차가운 물길
물을 자르며 돌아보지도 않고 가고 있다

다시 뒤집어 입었다
주머니마다 맵고 신 이야기들 주름 깊다
슬픈 듯 초연한 듯한 얼굴 내민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제까지 나는 내 이야기를 정리하고
날개에 묻어온 이야기를 계속 쓰는 시인으로
철새와 더불어 오가며 설레임으로 기다림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때맞춰 날아간다
철새 떼 기다리며 이야기를 시로 쓰는 날까지
나는 시인이라 부른다.
-시인의 말 중에서